신용카드 자기띠 손쉽게 복제 안도둑엔 속수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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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용카드 위.변조에 대한 대비책이 너무 허술하다.

신용카드회사 직원이나 승인조회서비스사 직원이 고객신용정보를 빼내주기만 하면 복제기는 국내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신용카드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은행 BC카드 위조.거액인출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은 29일 신용카드 6백27장을 위조해 1억5천여만원을 빼낸 혐의로 BC카드사 정보시스템부 직원 송금석 (宋錦錫.33) 씨 등 일당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宋씨는 이달초 본사 전산실에서 다섯차례에 걸쳐 고객 7백49명의 신용정보를 빼내 친구인 신학용 (申學容.33) 씨에게 전달, 카드복제기로 비밀번호 등을 마그네틱띠에 입력하는 수법으로 위조카드를 만들었다.

이들은 서울과 홍콩을 오가며 위조한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

지난해 10월과 95년 카드거래조회사 전산과장과 L카드사 직원이 각각 신용정보를 위조단에 팔아 넘긴 사건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카드사 직원이 범행을 주도한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속칭 '카드깡' 업자가 손님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카드를 복제하거나 가맹업소에서 카드 결제때 손님의 신용정보를 빼내 위조카드를 만드는 고전적 수법을 넘어서 무더기로 피해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홍콩에서 2백70만원에 구입한 최신형 복제기와 국내 인쇄소에서 구입한 공 (空) 신용카드.전화카드를 이용해 하루 6백여장의 위조 신용카드를 만들어 냈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카드복제기는 약국.음식점.학원 등에서 회원카드 발급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시중에서 2백여만원만 주면 쉽게 구입할 수 있어서 신용카드 위조는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신용카드 관련 범죄는 2천38건으로 최근 4년동안 72%나 늘어났으며 한해 평균 피해액은 30억원이 넘는다.

이같은 신용카드 위조를 막기 위해서는 마그네틱띠에 '물결무늬 보호막' 을 덧씌운 신종카드나 반도체칩을 부착한 IC카드, 지문.눈동자 확인방식의 신용카드 도입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비용 문제로 미뤄지고 있다.

BC카드 남을우 (南乙祐) 신용정보부장은 "위조를 방지할 수 있는 IC카드가 2002년에나 실용화될 전망이며 현재로서는 대부분 카드회사들이 직원의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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