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회장, 북한에 줄 메시지·선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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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갖고 간 대북 메시지는 없다. (북한에 줄) 아무런 선물도 없다.”

방북 중인 현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따로 전달할 계획은 없다고 정부 당국자가 14일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이 당국자는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 석방과 관련해 현 회장이 남북 관계에 대한 정부의 메시지나 선물 보따리를 갖고 갔다는 관측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여기자 석방과 북핵 문제를 분리해 대응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도 유씨 석방과 여타 남북 관계 현안은 별개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이어 “인도적 사안인 유씨 석방에 북측이 협조해준 만큼 정부가 인도적인 대북 지원을 재개 또는 확대할 것이란 추측도 사실과 다르다”며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의약품·생필품·농작물 개량사업 지원 이외에 쌀·비료 등을 대규모로 지원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진정한 태도 변화를 보이기 전까지는 대규모 대북 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이 지난해 발생한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성의 있는 재조사 등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관광사업을 재개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돈줄을 죄고 있는 상황도 관광 재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 회장이 세 차례씩이나 일정을 연장했음에도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미뤄지는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이 현 회장을 먼저 만나 본 결과 정부의 메시지나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자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따로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그래도 면담이 성사된다면 대북 사업에 열의를 보이는 현 회장에 대한 의리와 예우 차원에서의 만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종합하면 유씨 석방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 관계가 급격히 풀리거나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가 대북 정책의 ‘원칙’과 ‘일관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유씨 석방을 계기로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며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도 획기적인 제안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유씨 억류 사건만 해도 현대그룹의 중국 베이징 채널을 통해 협의를 거듭한 결과 석방을 하겠다는 북측의 방침이 이미 지난달에 결정됐다고 정부 소식통들은 전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측이 석방을 결정해 놓고도 여러 차례 날짜를 지체하는 바람에 늦어졌다”며 “북측이 막판에 요구해 이뤄진 현 회장의 방북은 현지에서 석방 교섭을 하자는 게 아니라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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