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임우기,데뷔 30년 김수현 본격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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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드라마 작가 김수현 (55) .지난 68년 MBC 드라마 공모에 '저 눈밭에 사슴이' 로 얼굴을 내민 이후 30년이 지났다.

'김수현 = 성공' 이란 등식이 붙을 정도로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닌 사람. 하지만 세인의 평가가 그녀만큼 극명하게 맞서는 경우도 드물다.

'언어의 연금술사' 라는 극찬에서 '말장난의 천재' 라는 비아냥까지. 아쉽다면 그에 대한 본격 비평이 없었다는 점. 그의 정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문예중앙' 겨울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임우기씨의 '집과 밥과 말과 사랑' . 지난 30년 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온몸에 받아왔음에도 '대중작가' 라는 이유 하나로 본격 평론에서 외면됐던 김수현의 작품세계를 파헤쳤다.

그동안 '따로 놀던' 문학과 TV를 '함께 어울리게' 했다.

임씨는 우선 김수현이 생활현장을 다루는 TV드라마의 속성을 정확하게 통찰한다고 치켜세운다.

속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김수현 특유의 감각적 대사도 바로 이런 의식의 산물로 해석한다.

수다스런 말투, 딱딱거리는 억양, 거칠고 빠른 대화는 서민들 안방 풍경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 "김수현 문체의 억양의 드셈이나 문법적 활기는 현실적 생활력의 표현이다" . 임씨는 '감성적 문체' '언어의 유희' 등 종전의 평가는 뜨내기 수사 (修辭)에 불과하며 서민들 삶의 속살을 꿰뚫는 김수현의 문제의식을 읽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방앗간 집.함박집.설렁탕집 등 '밥타령'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서민에 대한 작가의 꾸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임씨는 특히 팽팽한 갈등과 긴장구조 속에서도 특정인물을 부각시키지 않고 사람살이의 많은 조각을 촘촘히 엮어나가는 김수현의 '인생 평등주의' 에 주목한다.

김수현 정도면 어느 소설가 못지 않게 활발하게 얘기돼야 마땅하다는 것. 문학평론가.신방과교수.연출가.배우 등 13명이 김수현의 모든 것을 다룬 단행본도 다음달 초 나와 김수현 데뷔 30년을 축하할 예정.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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