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은행 ‘비밀’ 결국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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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가 드디어 열린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3일 미국·스위스 양국 정부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의 미국인 고객 정보 공개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다고 보도했다. 양국은 세부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으나, 전문가들은 1만 명 정도의 고객 정보가 미국 국세청(IRS)으로 넘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 은행들은 예금주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IRS는 올 초 UBS에 탈세자금을 숨겨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인 고객 5만2000명의 명단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UBS는 수세기 동안 유지한 스위스의 ‘은행 비밀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스위스 정부도 UBS가 고객 정보를 넘기려 할 경우 관련 데이터를 압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스위스를 버진아일랜드·버뮤다 등과 함께 조세 피난처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을 검토하는 등 압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위스 정부는 결국 은행 비밀주의가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미국과 합의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 세계의 탈세자금과 검은돈 수천억 달러가 스위스 은행에 예치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위스는 총 2조 달러의 외국인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은행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탈세자금의 도피처로 여겨졌던 스위스 은행들은 신뢰에 타격을 입으면서 외국 고객들의 자금 이탈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FT는 미국 정부가 UBS를 시작으로 다른 국가 은행들에 대한 탈세자금 조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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