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내각제 내분봉합 안간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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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민련이 박태준 (朴泰俊) 총재의 "내각제 개헌시기는 추후 협상이 가능하다" 는 발언을 추스르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다.

자민련으로선 당론과 배치되는 이 발언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총재의 말을 왈가왈부해 당내 갈등이 불거지는 것처럼 비쳐서도 안된다.

그러다 보니 대응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사자인 朴총재는 20일 오전 자택을 찾아간 이완구 (李完九) 대변인에게 "내 말이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주장과 다를 게 없는데 왜들 그러느냐" 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朴총재의 반응은 李대변인에 의해 이날 오전 당에서 열린 간부회의때 전달됐다.

일부 참석자들은 "그런 식의 총재 발언이 자꾸 보도되면 곤란하다" 며 불만을 토로하던 중 朴총재의 반응이 전달되자 함구했다고 한다.

김용환 (金龍煥) 수석부총재가 "총재의 뜻이 그게 아닌데 당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자민련은 그러나 향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터져나올 것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두가지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총재가 어떤 얘기를 하든 당직자들이 그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국민회의와의 한판싸움이 벌어지기도 전에 자중지란을 일으켜 봐야 백해무익하다는 판단이다.

金총리와 朴총재 사이를 오가며 두사람의 속마음을 전달해줄 인물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정계 출신이고 충남공주가 지역구인 정석모 (鄭石謨) 부총재가 거론됐으나 결국 김용환수석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두당은 朴총재 발언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사안의 미묘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일 국민회의가 이를 환영하고 나섰다간 거꾸로 朴총재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한나라당도 자민련이 분란에 휩싸일 경우의 복잡한 득실계산을 끝내지 못한 눈치다.

현재로선 자민련 朴총재의 발언을 일단 덮는 것으로 지나칠 분위기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 문제가 정국 최대의 현안이 되는 한 이런 식의 파문은 언제고 일어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사태도 초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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