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사장님' 재기경영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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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삼성.현대중공업 등에 중장비부품을 제작, 납품하고 있는 경남 김해의 T사 직원 39명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지난 3월 회사부도로 실직위기에 처해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이들이 "우리 힘으로 해보자" 며 당시 공장장이던 박병석 (朴丙錫.현 대표) 씨를 중심으로 뭉쳐 직접 공장 가동에 들어가 매월 2억5천여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기 때문. 부도 전 70명이 월 3억8천여만원어치를 매출한 것에 비해 총액은 줄었지만 1인당 매출액은 오히려 부도 전 (5백40여만원) 보다 1백만원이나 늘어났다.

회사가 이렇게 멋진 재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 이 된 근로자들의 노력 때문. 근로자들은 너나할 것없이 업체를 찾아다니며 주문을 받아오는가 하면 거래은행에도 "회사를 반드시 살려 인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 며 눈물로 매달려 공장가동을 허락받았다.

가동 한달 만에 정상을 회복한 근로자들은 매달 입.출금된 자금을 공개, 모두가 서로를 '사장님' 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대형부품 생산라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하정태 (河正太.32) 씨는 "직원 모두가 사장의 입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즐거움 속에 생산성도 높은 것 같다" 고 말했다.

IMF한파 속에 부도난 회사들이 '주인의식' 으로 똘똘 뭉친 근로자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업계에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지난달 공장.부지를 경락받은 자동차부품업체인 경남사천의 D산업㈜, 지난달 새로운 회사법인으로 새 출발한 서울의 한양머시너리도 신바람나는 '근로자 회사' . 지난 4월 사주가 부도를 내고 잠적했던 D산업의 경우 노동조합원 40여명만의 힘으로 매달 2억5천만원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부도를 겪지 않은 같은 업종의 회사들과 어깨를 겨루는 정도. 또 한양머시너리 근로자 1백여명도 대부분 건설업체들이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 예전의 40% 수주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그 2배에 가까운 70%대의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월급도 2백만~3백만원 수준으로 부도나기 전에 비해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이같이 망한 회사를 근로자들이 직접 인수.경영해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업체는 전국에 줄잡아 70여곳. 대부분 1백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로 부도를 낸 사주가 잠적한 뒤 생계유지 차원에서 근로자들이 뜻을 모아 인수.경영하고 있다.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 金성오 대표는 "근로자들이 생계유지 차원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하는데다 기존 경영자보다 현장을 더 잘 알아 문제해결을 쉽게 할 수 있어 성공하는 것 같다" 고 진단했다.

金대표는 그러나 "이들 기업이 대부분 담보능력 부족 등으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아 이같은 성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제.금융상의 혜택 등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고 말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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