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년]7.정치권도 개혁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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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 16개 상임위는 지난달 11일부터 결산심사를 벌였다.

정부가 지난해 1백10조원에 달하는 예산 (특별회계 포함) 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그러나 입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결산은 으레 그러하듯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났다.

오전 한나절, 혹은 오후의 몇시간 동안 장관과 부처 단체장을 불러 "앞으로 잘하라" "의원님 말씀 명심하겠다" 는 하나마나 한 질문과 답변만 홍수를 이뤘다.

이를 보다 못한 내부의 자기반성도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김재천 (金在千) 의원은 결산심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를 내고 "이런 엉터리 결산을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 고 개탄했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는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IMF사태가 터진 뒤 정치권은 뭇매를 맞았다.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탐욕이 나라를 부도위기로 몰고 갔다는 국민적 공분 (公憤) 때문이다.

그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저효율 정치' '버려야할 구태' 는 나아진 게 없다.

정당과 의원들의 씀씀이는 축소된 게 사실이다.

그나마의 '비자금' 도 2년여 남은 16대 선거를 대비해 감춰두고 쥐어짜는 생활을 하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지난 7월 경기도 광명과 부산 해운대 - 기장을 등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선 IMF 이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살포됐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이 부분조차 의구심이 든다.

지난달 23일부터 치러진 국정감사는 IMF체제 아래서 정부 각 부처의 위기관리능력과 대응현황을 총점검할 호기였다.

그러나 여야의 정략적 이해에 휘말려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 국감' 을 벗어나지 못했다.

20일 내내 속칭 총풍 (銃風) 과 세풍 (稅風) , 고문과 감청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민생 (民生) 은 부각될 틈조차 없었다.

한건주의가 되풀이됐고 의원들끼리 멱살을 잡는 일도 벌어졌다.

음주 (飮酒) 국감.부실출석 등 구태도 여전했다.

이렇듯 여야의 진흙탕 싸움은 IMF를 맞기 이전이나 이후나 달라진 게 없다.

올해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심했다.

국회.정당.선거제도를 다 뜯어고친다는 정치개혁도 아직까지는 말뿐이다.

보스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자고 나면 당을 바꾸는 철새, 걸핏하면 뛰쳐나가는 장외정치 등 여야 모두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IMF 이후에도 가장 정신을 못 차린 집단은 역시 정치권" 이란 비난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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