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국과 곧 중대한 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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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4일 평양 방문 이후 북한 당국의 대미 접근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반면 북한은 대남 접촉에는 미온적 태도로 나서고 있어 통미봉남(通美封南)식의 이중잣대를 내세우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김영일 북한 외무성 부상은 10일 “조만간 조·미 관계에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북한과 몽골 간 외무차관급 회담에서다. 김 부상은 북핵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조건이 충족될 경우 미국과의 대화까지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와 이 틀 내에서의 북·미 접촉만 가능하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구애공세(charming offensive)’를 펼치는 모양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4일 평양을 찾은 클린턴 미 대통령을 미소로 환대하고 억류 여기자 2명을 귀국 비행기편에 함께 보냈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적용하는 룰은 분명히 다르다”며 “미국만 잡으면 한국은 그냥 딸려 온다는 식의 인식을 평양의 대남·대외 전략가들이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억류 근로자 유모씨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일정까지 하루 늦추며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면담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현 회장이 평양에 체류 중인 12일에는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 함흥시의 김정숙해군대학을 방문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한·미에 대한 북한의 이런 온도 차 나는 분리 접근법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월 핵실험 등으로 국제사회의 공분을 산 북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조틀이 어느 때보다 단단하기 때문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통미봉남 카드만으로 한국을 제어하기는 어렵다는 걸 북한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서울=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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