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박한이 "톱타자라 함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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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야구에서 톱타자(1번타자)는 중요한 자리다. 상대팀 선발투수와 첫 대결하는 1번타자가 기선을 제압하면 팀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지만, 그 반대가 되면 승리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누구를 톱타자로 앉히느냐는 큰 고민거리다.

이런 점에서 삼성은 행복한 편이다. 확실한 톱타자 박한이(25)가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동국대를 졸업한 그는 데뷔 첫해부터 '1번'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제 대구 홈구장에선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광판에 '부동의 톱타자'라는 문구가 뜰 정도다.

박한이는 지난 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톱타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1회 첫 타석에 들어선 박한이는 SK의 선발 신승현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초구 스트라이크는 흘려보냈지만, 이후 볼을 세 개 고르고 파울을 두 개 쳐내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신승현의 기분은 구겨졌고, 7구째 그만 어깨 힘이 빠지고 말았다. 박한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전안타. 여기서 그치지 않고 SK의 패스트볼 때 2루를 밟은 뒤 후속 박종호의 좌중간 떨어지는 짧은 안타 때 재치있는 전력질주로 선취점까지 올렸다.

신승현은 완전히 기가 꺾였다. 삼성의 타선은 1회에만 4점을 뽑으며 15-5로 대승했다. 박한이는 4회에는 3점 홈런포를 때리는 등 이날 5타수 3안타.1볼넷.4타점.3득점을 기록했다.

성적도 좋았지만 박한이가 남긴 말은 더 멋졌다. 그는 "전날 경기에서 몸에 맞는 공이 하나 있었는데 정말 아팠다. SK 투수들이 미안해서 오늘은 몸쪽 승부를 못할 줄 알았다. 바깥쪽 공을 노렸는데 적중했다"고 말했다. 전날 경기 결과를 가지고 상대 투수들과 심리전을 펼쳤단 얘기다. 이번 시즌 박한이가 팀 내 2위(1위는 양준혁)의 타율(0.319)과 출루율(0.403)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끔 하위 타선으로 돌려주기도 하는 코칭 스태프의 배려도 한몫하고 있다. 그는 "하위 타선을 오가면서 마음이 편해져 방망이가 더 잘 맞는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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