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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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끝별(1964~ ) '밀물' 전문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 응, 바다가 잠잠해서'라는 이 구문은 마치 돌아온 탕자(아들)와 어머니의 민간화법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 인생역정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가까스로'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비유된 두 배의 이미지보다 선행 이미지다. 이 숨결을 읽을 줄 아는 것이 또한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고 시읽기의 즐거움이다. 특히 '벗은 두 배(船) / 나란히 누워 있는 두 배(腹)'로 연결되어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댐으로써 파란만장한 부부애의 극치로 이끌어낸 점이 마이너스 상상력을 더해준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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