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노는 장비 차라리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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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컴퓨터 스피커를 만드는 H사는 지난달 일년밖에 안된 컨베이어 설비를 당초 구입가의 40%에 팔았다. 경기침체로 주문량이 크게 줄면서 이 설비를 일년 가까이 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방수 바닥재를 제조하는 J사는 거래처로부터 물품대금 대신 건설장비를 받았다. 거래업체의 부도로 납품대금을 못 받아 건설장비로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설비를 파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 거래 사이트에서 겨우 팔 수 있었다.

시계 부품 제조업체인 A사도 올 초부터 공장 설비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선뜻 설비를 사겠다는 매입자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들의 유휴설비 매물이 크게 늘고 있다. 5일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공단이 운영하는 유휴설비 거래사이트(www.findmachine.or.kr)에 올라온 지난 2분기 중 매물이 1871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나 증가한 것이다.

반면 2분기 중 유휴 설비를 사겠다는 매입 신청건수는 총 139건에 그쳐 지난해 동기에 비해 오히려 15%나 줄었다. 특히 이 기간 중 유휴설비 매매가 성사된 건수는 169건에 그쳤다. 사이트에 등록된 매물 건수의 9%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사업을 포기하고 유휴설비를 팔려는 건수는 크게 늘고 있지만 사겠다는 매입 건수는 줄고 있다"며 "투자심리가 되살아나지 않는 한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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