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와 후쿠다는 출신 배경과 지지자들의 계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다나카는 자수성가형의 정치인이었던 반면 후쿠다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 관료 경력을 가진 엘리트였다. 두 사람은 공식 석상에서는 말조심을 했지만, 사석에선 늘 상대방을 폄하했다고 전해진다. 다나카는 후쿠다를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했고, 후쿠다는 다나카를 “배운 것 없는 사람”이라고 얕잡아 봤다는 건 일본 정가에서 유명한 얘기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가쿠후쿠 전쟁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지금은 4대 연속으로 총리(모리-고이즈미-아베-후쿠다)를 배출하며 후쿠다 파벌의 후예들이 당권을 장악한 자민당과, 자민당을 뛰쳐나간 다나카 파벌의 후계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실력자로 버티고 있는 민주당 간의 여야 대결로 양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를 이은 전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자녀인 다나카 마키코 의원과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각각 외상과 관방장관으로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공동의 적과 싸울 땐 협력자였지만 눈앞의 권력을 놓고 다툴 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반목과 대립도 가쿠후쿠 전쟁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게 없다는 느낌이다. 당사자인 YS가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특수 관계”라고 표현한 데는 조금의 과장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덤까지 갖고 갈 것처럼 보였던 양김의 반목이 YS의 병문안을 계기로 봄눈 녹듯 풀리게 됐다. 이제는 DJ가 화답할 차례다. 하루속히 병상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두 사람이 두 손 맞잡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