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교육과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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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급은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좋다.

표준화된 시험을 더 많이 치르게 해야 한다.

취학 전 예비교육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부모는 자녀의 학습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교사의 처우개선은 좋은 교육을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

몇 년 전 미국 교육계에 충격을 던진 책 '학습의 격차 (The Learning Gap)' 의 중요한 결론 몇 가지다.

저자 스티븐슨과 스티글러가 미국의 교육 제도와 관행을 일본.중국.대만과 비교해 그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다.

한국을 연구대상에 넣었다면 꽤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적자유주의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은 십여년 전부터 미국 교육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문화의 장님 (Cultural Literacy.1987)' 으로 논쟁을 촉발한 버지니아대 허시 교수는 그후 핵심지식보급재단 (Core Knowledge Foundation) 을 만들어 학교 교육내용의 충실화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보수.반동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현장교사들의 호응도 적지 않다.

미국 교육은 오랫동안 우리의 모델이 돼 왔다.

여건이 허락되는 한 미국의 제도와 관행을 따라가는 것이 그동안 거듭된 교육개혁 시도의 손쉬운 방향이었다.

그러나 미국 교육의 원리 자체가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돼 있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기준에서 방향설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허시교수는 자신이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라고 자임한다.

주입식 - 암기식 교육이 필요하고 교육과정에서 경쟁이 강화돼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실제적 효용에 따라 논의돼야 한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과열경쟁에 시달려 온 우리 교육계에서는 경쟁을 최소화한 미국 교육의 자유주의를 이상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경쟁의 부재 (不在)가 교육효과의 경쟁력 쇠퇴로 이어졌다는 내부비판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를 계기로 각 부문의 국가경쟁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은 더더욱 절실한 문제다.

교사 정년단축과 근무평가제 등 교육부의 개혁방안이 격렬한 반대에 부닥치는 데서 우리 교육계의 개혁의식 수준을 본다.

학생들에게만 과열경쟁이 있었지, 교원들에게는 경쟁이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문제였다.

고통없는 개혁은 없다.

학교가 더 이상 교원복지시설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한 고통의 범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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