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사업조정 배경]민간기업 '경협과속'에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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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3일 현대의 대북 (對北) 사업을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한 것은 현대의 대북투자 청사진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자칫 전반적 경협과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위해 지난달 30일 방북했던 종교인들이 하루만에 추방당한 사건도 정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적십자를 통한 대북지원만을 허용해오다 지난 9월 민간끼리의 직접지원을 허용한 정부로서는 첫 대북지원 과정에서 북한측이 일으킨 이 '사건' 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북한의 관심이 큰 돈을 챙길 수 있는 특정 대형사업에만 있지 민간지원이나 당국간 대화에는 미온적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지난달 30일 이뤄진 정주영 (鄭周永) - 김정일 (金正日) 면담 이후 '유전 (油田) 개발' 등 검증없는 사업구상이 쏟아진 것도 정부의 신중한 자세를 낳는 요인이 됐다.

일정 수준의 제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석유가 나오는지 여부가 확실치 않고, 경제성이 있는지 여부도 모른다" 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金대통령은 특히 유전문제와 관련, 鄭회장에게 '주의' 를 준 사실도 공개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이 현대의 대북사업 전체를 문제삼는 것으로 비칠 것을 의식한 듯 "현대의 대북투자 성과가 미흡했을 경우를 우려한 것" 이라며 별다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통일부 등 정부부처에는 정부가 현대측에 지나치게 휘둘려왔다는 자성론 (自省論) 이 일고 있다.

햇볕정책과 정경분리를 주문 (呪文) 처럼 외며 현대의 관광선 출항에 매달려온 통일부조차 이젠 현대의 프로젝트에 대한 중간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6월 鄭명예회장 방북과 소떼 5백마리 지원으로 시작된 현대의 대북진출은 여론검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관광선 출항을 둘러싼 논란도 정주영 - 김정일면담 성과에 묻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한 청와대의 떨떠름한 입장을 정부의 남북문제 해법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민간경협의 활성화를 통해 당국간 대화채널을 가동하고 특사교환과 정상회담으로 남북공존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현대 등 민간기업의 지나치게 방만한 대북프로젝트가 문제가 될 경우 그 부담을 고스란히 현정부가 져야 하고 당국간 대화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정부를 배제한 채 기업의 이윤추구 자세만 이용하려는 북한당국에 대한 간접경고로도 볼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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