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커닝하는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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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류 연주자로 이름 있는 음악교수 P씨는 동료들에게 놀림받는 일이 한가지 있다.

입학시험때마다 커닝을 한다는 것이다.

P교수는 수험생의 연주를 자기가 정확히 평가했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옆칸에 앉는 동료에게 대충 어느 정도인지 사인을 보내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하곤 하는 것이다.

채점자가 소신껏 자기 평가를 내리지 않고 동료의 평가를 따라가려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동료들은 P씨를 '커닝교수' 라고 놀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P씨의 성실성에 경의를 품는다.

P씨에게 남들만한 평가능력이 없겠는가.

그가 커닝을 하는 까닭은 자신의 평가가 학생들의 운명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P교수는자신의 행위가 커닝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입학한 학생을 지도하며 수시로 평가를 내릴 때도 필요하면 동료들과 의논하는데, 입학시험이라고 안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험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더더욱 동료들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입학시험은 P씨뿐 아니라 예술계 교수들에게 늘 골치아픈 문제다.

대부분 교수들은 학업성적보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원한다.

그런데 전형은 학과와 실기를 합산한 성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많은 교수들은 실기평가를 극단화한다.

수준이 웬만하면 90점 이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40점 이하로 깔아버리는 것이다.

재능 없는 학생이 학과성적으로 밀고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막겠다는 뜻이다.

이런추세가 P씨처럼 소심한 교수들을 더욱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듣는 느낌이 좋고 나쁜 데 따라 5점을 더 주고 덜 주는 문제라면 괜찮다.

그런데 90점을 주느냐 40점을 주느냐 하는 일을 놓고 자신의 평가에 확고부동한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쪽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예능분야의 고액과외가 극성을 부리는 까닭도 상당 부분 이와 같은 평가의 극단화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종래의 '백화점식' 전형방법은 예술분야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실효성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 영역 저 영역의 성적을 합산해 한 줄로 세워 놓고 자르는 식으로는 특정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설 땅이 없다.

특히 우수학생이 몰리는 일류대학일수록 '뛰어난' 학생보다 '흠없는' 학생만 들어가게 된다는 불만이 있어 왔다.

몇개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단계 전형방법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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