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오염 '중증'…서울 취수정 95%가 못마실 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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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숨겨져 있는 생명' 지하수가 '불치병' 을 앓고 있다.

대도시의 폐기물 매립지나 대형 공장 주변은 물론이고 농어촌 지역, 심지어 일부 청정지역에 이르기까지 지하수가 황폐화하고 있어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방지 대책이 시급하다.

지하수는 21세기 '물전쟁' 에 대비한 우리의 마지막 천혜자원이자 소중한 유산. 강수량의 지역적.계절별 편차가 크고 전쟁위험이 상존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수야말로 일정하게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다.

어떤 식으로라도 오염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하수 부존 추정치는 강우량을 포함, 연간 수자원 총량의 12배인 1조5천억t. 이중 이용가능량은 강.댐용수 등 총 사용량 3백억t의 3분의1을 넘는 연 1백36억t이고, 이용량은 26억t. 전문가들은 현재 대도시 지하수의 80%, 농어촌의 경우엔 50%가 오염됐고 이중 20~30%는 단기간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진행됐다고 지적한다.

올해초 서울시가 8천4백70개 지하수 취수정의 수질을 분석한 결과 음용수 적합판정을 받은 곳은 4.9%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국자원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비상시에 사용하는 서울시내 2백80개 비상급수 관정조차 88%가 먹지 못하는 물로 드러났다.

이는 전쟁.천재지변과 같은 비상사태 때 먹을 물이 없다는 것으로 충격적이다.

기획취재팀은 지난 두달간 서울.부산.대구.광주.제주 일대의 지하수 취수관정 25개를 주요 지역별로 선정, 오염도와 오염원을 직접 실측했다.

그 결과 정수처리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실 수 없을 만큼 대부분의 지하수가 심한 오염 몸살을 앓고 있었다.

지난 24일 오후 대구 비산공단내 B염색공장. 공업용수로 쓰이는 이 공장의 지하수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전기전도도 (EC) 오염기준치 (3백~4백/㎝) 의 4배에 가까운 1천3백91/㎝가 나왔다.

전기전도도는 수용액이 전류를 운반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장 일반적인 지하수 오염측정 지수. 이날 동행한 한국자원연구소 성익환 박사는 "이 수질은 음용수는 물론이고 공업용수로도 부적합하다" 며 "환자로 치면 중증" 이라고 진단했다.

농어촌도 오염정도는 마찬가지.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의 조사에서는 주 오염원인 축산 폐기물과 농약의 잔류물로 인해 1천17곳중 48%가 식수 부적합으로 판정났다.

지난 27일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옛 농토였던 안양시 인덕원의 H공업사내 지하수에서는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 (TCE) 이 소량 검출돼 충격을 주었다.

전국적으로 이같은 오염을 부채질하는 주범은 바로 개발.이용 후 쓸모없게 된 폐공들. 공장폐수나 매립지 침출수.농약 등 지표의 온갖 오염원이 얕게는 1백~2백m에서 깊게는 1천m가 넘는 이곳을 통해 지하 암반층 밑으로 곧바로 유입돼 폐공은 '오염 고속도로' 로 불린다.

현재 지하수 관계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폐공은 전국적으로 2백만개 이상. 인구 20명당 1개꼴로 전국토에 구멍을 낸 셈이다.

농어촌진흥공사 박흥룡 지하수사업처장은 "지금도 매년 10만개의 관정을 뚫고 4만개의 폐공이 발생하고 있다" 며 "앞으로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대책이 없다면 지하수 오염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정부가 지하수법을 제정한 것은 93년 12월. 3년 뒤에는 지하수개발 허가제를 도입하는 등 지하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생한 폐공에는 속수무책인데다 지금도 폐공을 양산하는 무면허 시추업자가 활개치고 있는 등 여전히 제구실을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하수환경학회 한정상 회장은 "지하수가 한번 오염되면 정화되기까지 수십.수백년이 걸리는 만큼 현재 누구나 마음대로 퍼 쓰는 지하수에 국가가 소유하는 공개념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고 역설했다.

제보전화 02 - 751 - 5222

기획취재팀 = 고종관.정재왈.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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