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뚝배기등 부엌식기에 복고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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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얼마전 직장후배의 집들이에 갔던 회사원 이영길 (39) 씨는 상 한가운데 자글자글 끓고 있는 뚝배기에서부터 각종 찬을 담은 식기가 모두 옹기여서 깜짝 놀랐다.

투박하면서도 세련돼 보여 새댁 친정어머니의 감각을 칭찬하자 후배부인은 "환경호르몬이 걱정돼 고른 것" 이라고 해 이씨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환경호르몬파동 이후 부엌에 '복고바람' 이 불고 있다.

뚝배기.김치독 등 옹기류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3~4년 전. 다소 비싼 가격 때문에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수요가 줄어들었다가 플라스틱그릇 등에서 각종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다시 찾는 이들이 는 것.

롯데백화점 (소공동지점) 옹기코너의 강정희씨는 "요즘엔 냉장고용 김치독이나 커피.프림통, 구이판 등 모양.기능도 다양해져 예비신부들이 오히려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혼수품으로 구입해가는 경우도 많다" 고 전한다.

옹기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맛' .전통부엌도구만 1천여점을 수집해온 배화여자전문대학교 윤숙자 (전통조리학과) 교수는 "김치나 찌개그릇만큼은 전통식기의 맛을 따라갈 수 없다" 며 " '살아 숨쉬는' 항아리는 김치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에게 적절히 공기를 조절해 공급해주고, 두툼한 뚝배기는 밥을 절반쯤 먹을 때까지도 찌개의 온도를 보전해준다" 고 설명한다.

윤교수는 특히 김치나 장독은 한가지 용도로만 사용할 것을 권한다.

김치.장.술을 만드는 균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맛' 때문에 전통식기를 찾는 이들도 많다.

주부 배정자 (46.서울강동구명일동) 씨는 결혼 초 선물로 받은 것을 쓰기 시작, 20여 년째 옹기를 애용해오고 있다.

손님접대는 물론 일반식기로도 옹기만 쓰고 있는데, 설거지 할 때 다소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아무리 써도 싫증이 나지 않아 좋다고. 광주요 도자문화연구소 박효진 생활문화연구실장은 "화려한 서양 식기는 음식보다 식기에 시선을 가게 만들고 깔끔하고 매끈한 사기 그릇은 음식만 돋보이게 하는데 비해 옹기류는 음식과 조화도 잘 되고 서양음식을 담아놓아도 세련미가 있다" 고 귀띔한다.

전통옹기는 일반적으로 진흙을 구워 초벌구이한 뒤 천연잿물을 발라 1천1백도~1천3백도의 장작불에 구워낸다.

그래서 두께가 두툼하고 그릇 바닥이나 뚜껑 안쪽에 굵은 모래가 붙어 있는 것이 많다.

모양도 불규칙하게 '못생긴' 편인데, 최근엔 가스가마를 이용하면서 두께도 좀 얇아지고 모양도 깔끔해졌다.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이칠용회장은 "좋은 옹기일수록 작은 돌멩이 등으로 두드려봤을 때 맑은 쇳소리가 나며, 유난히 광택이 강한 것은 납성분이 들어있는 공업용 유약을 발라 5백도 안팎에서 구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고 고르는 요령을 들려준다. 매해 김치독은 물로 씻어낸 다음, 고추씨를 태워 그 연기로 독 안을 소독해주는 것이 좋다.

찌개나 밥솥용 뚝배기도 오래 사용하다보면 표면에 보이지 않는 금이 생기기도 하므로 매번 뜨거운 물로 씻어 완전히 말려서 쓸 것. 뚝배기나 항아리는 가격대가 1만원대에서부터 다양하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용 김치독은 1만5천원~3만6천원, 작은 양념통은 1만1천원~1만5천원 선.

쁘랭땅백화점3층 무공해식생활용품 상설전시장이나 한국전통공예 초청특별전 (31일까지 서울인터콘티넨탈호텔2층).서울문화관광상품전 (11월4일~10일 서울테크노마트1층) 등에서 무형문화재급 장인들의 옹기를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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