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목포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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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일랜드인은 뛰어난 얘기꾼이다.

조너선 스위프트.조지 버나드 쇼.오스카 와일드.W B 예이츠.제임스 조이스.새뮤얼 베키트 등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다.

인구 3백50만명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를 두명이나 배출했다.

와일드는 아일랜드인이 역사상 고대 그리스인 다음가는 탁월한 얘기꾼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인들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과 수난의 역사를 든다.

온화한 기후와 잦은 비가 빚어낸 푸른 초원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역사는 수난으로 얼룩진 가혹한 시련의 역사다.

끝없이 반복된 가난과 기근, 8백년에 걸친 이민족 지배, 살육과 파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역설적으로 이같은 고통이 그들에게 풍부한 문학적 자양 (滋養) 을 제공했다.

아일랜드인들의 수난은 문학으로 승화돼 세계인의 흉금을 울리고 있다.

로컬리즘의 세계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수난의역사로 말하자면 한국도 아일랜드만 못하지 않다.

한국인의 고유정서 가운데 하나인 한 (恨) 은 비단 문학뿐 아니라 한국예술 곳곳에 스며 있다.

한국인의 한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은 세계인을 감동시킨다.

영화 '서편제' 를 본 외국인들이 판소리를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한국문화의 보편화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 역시 포르투갈 하층민들의 사우다데 (슬픔)가 작품의 기본토대다.

가을이깊어가는 요즘 서울 호암아트홀에선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젊은 극작가 장우재의 '목포의 눈물' 이 그것이다.

목포와 영산강을 배경으로 한 작가 자신의 가족 수난사 (受難史) 를 다룬 이 연극은 죽음을 앞둔 노파 문월산이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가슴속에 맺힌 한을 푸는 해원 (解寃) 의 씻김굿이다.

목포라는 특정지역의 정서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현대 한국인들이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피맺히도록 아픈 과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눈물을 닦고 닦으면 언젠가는 웃을 날이 있다" 는 주인공 문노인의 말처럼 요즘 하루하루가 힘겹다 해도 언젠가 좋은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위안을 한 편의 연극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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