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지 등 국내 통신업체들 '反퀄컴'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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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퀄컴 지원금은 안받겠다. " 지난 26일 미국의 벤처기업인 퀄컴은 대덕연구단지내 정보통신대학원대학에서 'CDMA (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연구소' 개소식을 갖기로 했으나 대학측이 행사를 취소하는 바람에 낭패를 맛봐야 했다.

행사 참석차 대전으로 내려온 앤드류 비터비 퀄컴 부회장은 강연회만 간단히 갖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이 학교 최해욱 연구기획처장은 "지난달 퀄컴이 연구소를 세우겠다고 제안, 검토 중이었는데 퀄컴이 행사를 강행해 저지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퀄컴이 25만달러 규모의 CDMA 이동전화 장비를 한국과학기술원에 기증하려 했으나 기술원측이 이를 보류해놓은 상태이고 지난달 15일에는 어윈 제이콥스 퀄컴회장이 방한, 배순훈 (裵洵勳) 정보통신부 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퀄컴과 정보통신부.한국 휴대폰 제조업체 사이에 앙금이 쌓이면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퀄컴은 한국이 지난 94년 디지털 휴대폰의 국내 표준으로 정한 CDMA방식 기술의 소유자. 퀄컴이 지난 3년간 휴대폰용 핵심 부품인 모뎀.신호처리 칩을 독점 공급하면서 챙긴 각종 기술료는 무려 10억달러.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지난달 기술료 (매출액의 5.75%) 를 깎아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고, 되려 새로 개발한 핵심 칩을 기존의 기술료 외에 휴대폰 한대당 2.5달러를 더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정통부 노희도 기술정책심의관은 "비록 한국업체의 필요에 의한 것이긴 해도 한국이 아니었으면 퀄컴은 생존하기조차 힘들었을 것" 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유럽식 (GSM) 휴대폰을 표준으로 정할 때 한국이 퀄컴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을 줬는데 계속 비싼 댓가만 요구한다는 것. 현재 전세계 CDMA 휴대폰 가입자 (약 1천8백만명) 중 67% (1천2백만명)가 한국 가입자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은 ^내년부터 국산칩을 적극 사용하고 ^퀄컴의 신개발 부품구매를 자제하며 ^부품 수입선을 다변화할 것 등을 최근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퀄컴 비터비 부회장은 "이번 연구소 설립은 한국 내의 '반 (反) 퀄컴'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추진한 첫 사업인데 통제할 수 없는 (out of control) 요인으로 인해 무산된 것이 무척 안타깝다" 며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는 입장을 밝혔다.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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