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첫 국정감사]솜방망이 질문 목소리만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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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야가 뒤바뀐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국감에선 예상했던 사태가 첫날부터 그대로 나타났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의 '정부 감싸기' 와 야당이 된 한나라당의 '목소리 높이기' 다.

야당시절 국민회의 의원들은 '송곳질문' 으로 유명했다.

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의 의원평가에선 상임위별로 국민회의 의원들이 평가 윗자리의 다수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선 이런 날카로움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자민련도 적당한 수준에서 동조하는 형국이다.

물론 목청을 돋우기는 하지만 구정권이 문책받을 게 분명한 경우다.

국민회의는 국감 준비과정에서부터 수위조절을 했다.

의원 보좌관들의 사전모임에선 "폭로성 추궁이나 한건주의, 정부 비판 일변도는 자제하자" 는 기본지침이 전달됐다고 한다.

행정부에 대한 폭로기사가 여권 의원들의 자료에서 계속 터져나오자 국민회의는 부대변인들에게 상임위를 할당, 의원들의 자료가 배포되기 전 사전 상의토록 하는 등 고심을 거듭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국감 현장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산자위 소속 모 의원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특명으로 구성된 비상수출대책반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했다가는 나중에 "너무 몰아친 것으로 비치면 곤란한데…" 라며 기사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 위원회의 또다른 국민회의 의원은 당초 포철의 인건비 과다책정 등 방만

한 경영을 비판하려고 준비했다가 아예 질문자체를 안했다.

자민련의 모 의원은 "공동여당도 여당인데 과거처럼 할 수 있느냐" 며 서면 질문으로 대치한 뒤 일찌감치 자리를 떠버리기도 했다.

환경노동위에선 평소 깐깐한 질문으로 공무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방용석 (方鏞錫) 의원이 간척사업으로 점차 줄어드는 갯벌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갯벌 파괴의 새로운 형태와 보존방안' 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통일외교통상위에선 국민회의 모 의원이 탈북자 실태를 질타하려다 질문자체를 안했다.

이 의원의 보좌관은 "여당인데 정부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 고 토로했다.

국민회의측은 대신 대안제시쪽에 초점을 맞춰 국감장에서는 정부에 대해 '훈수' 를 두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정동채 (鄭東采).설훈 (薛勳).김민석 (金民錫).길승흠 (吉昇欽) 의원 등은 방대한 양의 정책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했다.

야당으로 변신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우 의욕은 넘치지만 과거 야당이던 국민회의처럼 화끈한 폭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야의 계속된 강경대치 정국으로 인해 국감준비 기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한 이유인 듯싶다.

한나라당 모 의원은 "국감은 제보가 가장 중요한데 아직도 우리를 여당으로 아는지 제보보다 민원이 훨씬 많다" 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총풍 (銃風).세풍 (稅風) 등 정치현안에만 집중하고 실사구시 측면의 '감사' 는 등한히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종혁.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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