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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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나쁜 놈. 엇따 대고 거짓말을 날탕으로 들이대?" 한쪽 볼따구니가 화톳불에 댄 것처럼 당장 화끈거렸다.

그러나 철규의 넉살도 이젠 가당찮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손바닥으로 볼을 쓱 문지르고 있는 철규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함빡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변씨로부터 따귀를 얻어 맞는 찰나 머릿속으로는 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는 문구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놀란 것은 오히려 변씨 쪽이었다.

엉겁결에 따귀를 때려놓고 보니 해선 안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변씨는 자신도 모르게 철규에게 묻는 것이었다.

"한선생 아퍼?" "별소리를 다 하시네. 설마하니 형님이 날 아프라고 때렸겠어요. " "한선생 넉살 보자니, 이젠 어엿한 장사꾼이 되었구만. " "형님에게 따귀 얻어맞고 어엿한 장돌뱅이 노릇을 할 수 있다면, 볼따구니쯤이야 백 번이라도 얻어 맞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계집 밝히는 병통만 없다면 큰절이라도 해주고 싶구만. 참말로 안 아퍼. " "허 참. 안 아프다니까. 왜 자꾸 꼽씹어 물으십니까. " "한쪽 볼에 연꽃이 피었는데도 아프지 않다고 떼를 쓰고 있는 한선생이나, 아프라고 때려놓고 아프지 않느냐고 염치없이 묻고 있는 나를 남들이 보았으면 애들 말로 사오정들의 행진이라고 웃겠구만. 그렇게 얻어맞고도 아프지 않다면, 내 완력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거나 한선생이 각기병을 앓고 있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야. "

"각기병이든 피부병이든 상관 않겠습니다.

아프다고 이실직고하면 형님이 엄살 피운다고 더 때릴까봐 거짓말했습니다.

이제 속 시원하십니까?" "한선생 솔직한 말 한마디가 얼음 구멍에 대가리 처박은 것보다 속시원하구만. 그렇게 애걸하는데 쪼빼고 있으면 내가 나쁜 놈이지. 그러나 마음 속은 아직도 올지갈지 하구만. 형식이 놈도 걱정이었지만, 의성장에서 곱다시 늙은 놈 취급당하고 구둣발 밑에서 뒹구는 창피만 당하지 않았어도 내가 변덕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야.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뽄새를 보면 한선생 같이 멀쩡한 사람도 사십연갑만 되었다면 천덕꾸러기 취급은 물론이거니와 다짜고짜 늙은이 취급 아닌가.

서양의 어떤 나라 대통령은 오십이 넘었는데도 정력이 넘쳐흘러 여자만 봤다 하면 고기방망이가 벌떡 일어서서 주체를 못한다지 않는가.

오십이 되어도 넘치는 기백과 정력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은 나한테도 용기를 주는 대목이지만, 그 양반 한가지 비난받을 게 있더구만. " "그 나라가 오랜만에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다는데, 비난받을 게 있겠습니까?" "보여준 행동이 사내대장부로선 비겁하다는 거야. 어째서 엎드려서 해야 할 일을 서서 하느냐 말이야. 여자하고 하고 싶다면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망정 당당하게 자리 펴고 엎드려서 해야지.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게 뭐야. 한선생은 절대로 그러지 말게. "

"이성과 욕정 사이에서 번뇌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 "설마 한선생이 어젯밤에 그런 멋대가리 없는 짓은 벌이지 않았겠지?" "엎드려서 해야 할 일을 서서 한 적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 번, 군대시절 사격훈련할 때 서서쏴 한 것밖에 없습니다.

깔아둔 이부자리가 바로 곁에 있는데 미쳤다고 서서 하겠습니까. "

"넉살 좋다고 치켜세워 주었더니, 이젠 뻔뻔스러워져서 못할 소리가 없군. " "모두가 형님을 위시해서 우리 행중들과 뒤섞여 산전수전 겪어온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반죽이 늘었다고 할까요. 옛날 같았으면 쑥스러워서 입에 담지 못할 얘깁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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