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탈북자 문제, 원칙 있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등으로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폰 트라프 대령 가족이 알프스를 넘는 것으로 끝난다. 트라프 대령에게 어린 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나치독일을 탈출할 용기를 준 것은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산 너머 세상이다.

'심야의 탈출'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던 애드벌룬이 동독의 국경 감시구역 안에 떨어져도 피터가 절망하지 않은 것은 탈출에 성공만 하면 가족을 받아줄 서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만명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탈북자들에게 '산 너머 세상'은 한국이다. 기아와 정치적 박해 등으로 북한을 떠나 중국 공안에 쫓기고 동남아 국가로 떠돌며 비참한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가 베트남에서 탈북자를 한꺼번에 468명이나 데려온 것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그러나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조용한 외교'의 기본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집단 입국은 예외적인 조치였다고 강조한다. 북한의 반발을 놓고도 언론 보도에 책임을 돌린다. 수백명을 데려오면서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는데도 말이다. 탈북자 문제를 '조용한 외교'로 해결하겠다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필요 이상으로 북한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탈북자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탈북자 문제는 너무나 절박한 현안이 됐다. 해마다 입국자가 배로 늘어난다. 또 다른 동남아국가에도 300명 이상이 모여 입국을 기다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탈북자는 중국과 동남아에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고, 남북한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이제 남북관계에서 탈북자를 어떤 가치로 다룰 것인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는 모두 수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어떤 기준으로 데려올지, 언제까지 정부가 직접 나설 것인지, 아니면 독일처럼 종교단체 등을 내세울 것인지 예측가능한 전략도 세워야 한다.

외교에서는 모호성이 유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책의 모호성은 북한과 주변국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탈북자의 한국행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중국 정부가 대사관으로 들어간 경우에 한해 묵인하고 있는 것도 정부가 분명한 의지를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대사관 밖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문제에 대해서도 원칙을 세워 해법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 반발하는 것은 체제 전복에 이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정책의 모호성은 이런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지난 2년간 탈북자 문제로는 한번도 남측을 비난한 적이 없는 북한이 장관급회담까지 무산시키며 반발하는 것도 체제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남 경제 의존도를 감안할 때 남북 간 긴장상태가 오래가는 것은 북한에도 부담이다. 탈북자를 방치하는 것이 북한에 더 큰 국제적 망신이고, 탈북자 인권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 북한 붕괴 공작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으로 경제적 보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국 이후의 대책도 문제다. 국내에서도 실업자가 늘어가는 마당에 어떤 일자리를 줘 정착시킬 것인지, 남쪽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하류인생으로 전락할 때 느낄 배신감은 어떻게 달랠 것인지 걱정이다. 특히 그 불만이 집단화할 가능성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탈북자들에게 자본주의 학습을 시킬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도 가장 먼저 할 일은 분명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김진국 정치부 부장대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