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가격하락 너무 빠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의류 신상품중 처음 매긴 값대로 팔리는 것은 10벌 중 1벌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벌은 세일과 가격인하를 거치면서 판매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그래도 남은 재고는 헐값에 처분하는 이른바 '땡처리' 를 거치게 된다.

지난해만 해도 10벌중 평균 2벌 이상이 정가에 팔렸으나 올들어 그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 (평균수명) 도 부쩍 짧아지는 추세다.

15일 롯데백화점이 조사한 의류제품 판매동향에 따르면 정가에 판매되는 신상품의 비중이 지난해 평균 20% 이상에서 올해는 1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신사복 여름정장의 경우 올 3월 신상품이 출시돼 성수기를 앞둔 5월초 에스에스.갤럭시 등 국내 5대 브랜드가 소비자가격을 평균 30% 내렸다.

옷이 공장에서 나온지 두 달을 채 못 버틴 것이다.

예년 같으면 3개월 뒤인 6월초에나 이뤄졌던 가격인하가 한달이나 앞당겨진 것은 판매부진 탓도 있지만 의류업체들이 재고부담을 덜기위해 가격인하를 서둘렀기 때문. 첫선을 보일 당시 42만원짜리였던 캠브리지 양복은 5월초 29만원으로 30% 인하됐고 7월초에는 30% 세일을 하면서 20만원까지 내려갔다.

지난해의 경우 인하.할인판매 과정을 차례로 거친 7월초 바겐세일 가격은 29만원으로 올해보다 9만원이 높았다.

하지만 값을 내려도 판매부진에 따른 재고누적은 여전하다.

지난해 백화점 세일때 판매된 의류의 비중은 30%에 달했으나 올해는 20%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백화점 본 매장에서 판매되는 의류비중도 지난해 50%에서 올해는 30% 수준으로 낮아졌다.

대신 본 매장에서 쫓겨나 균일가.기획행사 등의 이름으로 행사매장에서 팔리거나 재고를 싸게 처분하는 아웃렛 매장에서 소화되는 의류비중이 30%에서 40%로 높아졌다.

여기에서도 소화되지 않은 옷은 유통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재래시장이나 임시매대에서 헐값에 처분되는 신세가 된다.

땡처리 비중은 지난해 20%에서 올해 30%로 높아졌다.

이처럼 제값을 못받는 제품이 늘어나면서 의류업체들의 자금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중소 의류업체들은 가격을 연거푸 인하하면서 재고소진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올 상반기만도 1백50여개 업체가 도산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금방 출시된 새상품을 50% 할인판매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9일부터 시작된 가을 바겐세일에서 숙녀복과 신사복 유명브랜드 신상품 가운데 일부를 50% 할인판매하는 '절반 이하 가격에 드립니다' 행사를 갖고 있다.

매일 다른 10여개 브랜드를 선정해 일부 행운권 당첨고객에게 절반 값에 팔고 있다.

신세계는 세일기간에 여성.남성.스포츠.잡화 등 2백여개 신상품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매일 한정판매하는 '아침 일찍 오셔서 50% 마크를 찾아주세요' 행사로 손님을 끌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 9일부터 매일 여성패션.아동.란제리.남성패션.스포츠.생활.패션잡화 분야에서 브랜드별로 40~60개 상품을 정해 상품당 2명에게만 선착순으로 절반 값에 팔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가격인하 속도가 빨라지면서 새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현저히 짧아지고 있다" 며 "새상품까지 미끼상품으로 동원되고 있어 정상가격 판매비중은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