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수사기관이 '말'을 훔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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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찰.경찰.안기부 등 수사기관의 감청이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 국감자료 등을 통해 확인된데 이어 이들 기관에서 과거정권과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감청부서를 운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이들 수사기관이 이같은 부서와 시설을 이용해 불법적인 도청마저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감자료를 통해 경찰이 6백51대의 감청장비를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고 검찰은 지난 3월 팩시밀리 통신을 빼내보는 팩스 인터셉트기 10대를 구입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이와 별도로 안기부는 현정권 출범 후 감청을 담당하는 부서를 2차장 산하의 8국 (과학보안국) 으로 명칭을 바꿨으며 지난 4월 안기부를 물러난 한 관계자는 "8국에는 ○○○명의 요원이 근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통신의 고위 관계자는 "안기부 전용회선의 총 용량은 1만회선 정도" 라고 말했으며 93년 국정감사에서는 '안기부 전용회선이 9천여선이고 이중 5천회선이 감.도청용' 이란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같은 기구와 시설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올 상반기 합법적 감청건수는 3백97건으로 경찰의 2천1백40건, 검찰의 8백53건보다 적다.

한 통신전문가는 "한국통신의 협조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은 전화국간의 전송회선에 해당기관의 전용회선을 연결하는 방식,가입자의 전화고장 여부를 시험하는 장치를 사용하는 방식, 각 전화국의 교환기에 직접 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감.도청을 할 수 있다" 고 말했으며 정보통신부의 고위 간부는 "현재도 안기부 직원들이 한국통신 관련기관에 파견된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한국통신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안기부가 감청리스트를 전달해주면 우리는 세곡동 청사는 물론 안기부 각 지부와도 전용회선을 통해 협조하고 있다" 고 밝혔다.

한 전화국 기술담당자는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쪽지가 내려오면 담당자들이 해당 선을 안기부 전용회선에 연결해주는 것이 관례" 라고 말했다.

또다른 한국통신 간부는 "안기부.경찰 등이 법원에 영장을 제출해야 하는 절차를 밟지 않아 협조를 중지하는 경우가 있다" 고 밝혔고, 감청 업무를 맡았던 전직 안기부원은 "안기부에서 합법적 절차를 피하기 위해 한국통신내 협력자를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고 말했다.

이로 인해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는 "전국 1백여개의 시민단체와 함께 '감청 남용과 도청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 대책모임' 을 추진중" 이라고 밝혔다.

이 모임에 참석할 예정인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내군 사무국장은 "감청 남용보다 재야인사.정치인 등에 대한 도청 여부를 따져야 한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안상수 (安商守) 한나라당 대변인도 "현정부들어 20만건의 도청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기부는 21일 "과거정권들의 경우와는 명백히 다르며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 안기부가 감청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고 말하고 "이는 이종찬 (李鍾贊) 부장이 수차 강조한 부분" 이라고 말했다.

도청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례와 이에 대한 피해의식도 크게 늘고 있다.

정치권은 상당수의 여야 국회의원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록된 휴대폰을 구해 통화를 하는 등의 자구책 마련에 나섰으며 천주교중앙협의회는 외부에서 전화선을 엿들을 때 경보가 울리는 도청감지기를 사무총장실 등 19곳에 설치했다.

◇감청과 도청의 차이 = 감청은 수사.정보기관이 국가안보.수사 등 공공의 목적을 위해 영장등 합법절차를 거쳐 유.무선통신을 듣는 것을 말한다.

반면 도청은 통신을 몰래 불법으로 엿듣는 것을 지칭한다.

국가기관의 행위라도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불법도청이다.

기획취재팀 <제보전화 02 - 751 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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