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음식 나눠 이웃사랑…서울 푸드뱅크 최주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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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회복지법인 은성직업기술원 최주찬 (崔周燦.61) 원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오전11시에 대형할인점에 가 흠이 생긴 야채.과일류를 받아오는 일에서 오후10시 서울용산구 동부이촌동 파리크라상에서 팔다남은 빵을 싣고 인근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기까지 그는 쉴 틈이 없다.

가출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직업교육을 하는 본업보다 더욱 그를 바쁘게 하는 것은 '푸드뱅크 서울지점 대표' 라는 직책. 푸드뱅크는 남은 음식을 기탁 받아 수요자들에게 종류.양.상태를 알려주고 받아가게 하거나 직접 전달해 주는 '음식물 나눔 은행' 이다.

지난1월부터 서울.부산.대구.과천 등 4개 지역에서 시범실시한 후 성과가 좋아 지난 9월 16개 광역자치단체로 확대됐다.

그간 서울에서만 6억1천여만원어치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추석 전날, 종로 낙원떡집에서 약간 터진 냉동 송편을 라면상자로 30개나 받아다가 쓸쓸하고 외로운 복지시설 10곳에 밤늦게까지 돌린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맛있는 송편 덕에 모처럼 풍성한 추석을 보냈다는 감사전화에 피곤한 몸마저 개운해지더라" 고. 그러나 그를 힘들게 하는 것도 있다.

음식물 운반 차량과 인력의 부족은 그 대표격. 한 예로 11t트럭에 과자 3천만원어치를 실으면 운반비만 40만원이 든다.

崔회장은 "그래도 이제 식품업체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며 흐뭇해한다.

지난9월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생긴 1377전화가 그 가교. 일상 (13) 적으로 출출 (77) 한 이웃에게 철철 (77) 넘치는 사랑을 전하자는 뜻에서 정한 번호인 탓인지 기탁건수가 하루 10건을 넘는다.

"개인들은 물론 슈퍼나 회사.학교의 구내식당까지 기증하는 분들도 정말 다양합니다. 우동.고등어 자반.인삼영양밥 같은 음식 뿐 아니라 콩나물.손두부.소뼈 등등 온갖 재료가 다 들어옵니다. "

崔회장은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이웃과 나눠먹는 예부터 내려온 우리 고유의 풍습이 노숙자.실직자가 늘어난 요즘 그 미덕을 발휘하는 듯 하다" 며 활짝 웃는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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