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차령산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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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은(1933~) '차령산맥' 전문

먼 산들을 좋아하지 말자
먼 산에는 거짓이 많다
시인이여
이제는 먼 산들을 좋아하지 말자
우리나라의 씨짐승인 시인이여
좀 더 가까운 볏단 걷은 들로
커다란 땅거미 속으로
우리에게 막아야 할 재난이 또 오고 있다.
이제까지의 오랜 오욕으로
어리석음으로 기뻐한 것들이
먼 산들이 되어 저물고 있다
태백산백의 오대산에서
치악 백운 서운산으로
천안의 작성 흑성산으로 저물고 있다



'나의 삶은 미풍에도 교조적이었다'고 술회한 고은의 시다. 그의 중요한 시적 모티브 가운데 하나가 산(山)이다. 여기서 산은 민중의 실체로 해석되는 산이다. 이처럼 자연친화적이거나 신성(神性)으로서 산을 대하는 전통적 방법과는 달리 현실 한복판으로 끌어낸 우뚝 선 산이다. 또한 풍류사의 산이 아니라 질곡된 민중의 역사 속에서 산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러므로 여기서 산은 역사 속의 진실 그 자체가 된다.

송수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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