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유가에 다시 기름 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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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원유 증산이 어렵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고위 인사의 발언이 과열된 국제 석유시장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푸르노모 유안기스토로 OPEC 의장(사진)은 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당장 늘리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OPEC인들 무슨 수가 있겠느냐" "유가가 날뛴다(crazy)"는 말도 했다.

그의 발언이 퍼지자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시간 외 전자거래에서 미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9월물 시세는 한때 정규 시장 종가(43.82달러)보다 높은 44.24달러까지 치솟아 하루 만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에 앞서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도 "증산 여력은 있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은 새 유전이 가동되는 4분기나 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OPEC는 6월 하루 평균 최대 생산능력(3160만 배럴)의 93%인 2929만배럴을 생산했다. 이는 1979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이지만 세계 수요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라크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와 터키 세이한을 연결하는 송유관이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석유 수출이 중단됐다는 소식도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푸르노모 의장의 폭탄성 발언에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하루 100만배럴의 추가 생산 여력이 있다"고 밝혔으나 시장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배럴당 100달러'라는 흉흉한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도이체방크는 한 보고서를 통해 동시다발적인 원유 공급 중단 같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점쳤다.

이 은행의 에너지 전략 연구원인 아담 지민스키는 "이라크 유정이 긴박한 사태로 무용지물이 돼 하루 200만배럴 정도 생산 차질을 빚고, 여타 지역의 원유 공급이 하루 400만배럴 줄 경우, 그리고 OPEC가 증산에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 겹치면 국제유가는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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