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율곡'뒤에 또 '백두'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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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신감청용 군정찰기 도입 (일명 백두사업) 을 둘러싸고 불거져 나오는 비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하나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 부정부패의 불교정성 (不矯正性) 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 정부는 93년 상징적인 군개혁 차원에서 율곡사업 (방위력 개선사업)에 대해 요란한 감사원 특감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직 국방장관을 비롯한 다수의 군고위간부들이 사법처리됐고 무기도입 비리는 군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최대 악폐로 규탄받았다.

이번 사건에서 구속된 군무원.영관급장교들이 무기중개상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사업 관련 기밀을 넘겨준 행위를 저지른 것은 대략 95~96년 무렵인 것으로 드러났다. 율곡특감의 서슬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더군다나 백두사업은 그 신성한 이름만큼이나 전임정권 방위력 개선사업에서 비중있는 일이었다.

단일 무기체계로서는 최대 규모였고 미국에 대거 의존하고 있는 군 정보력의 자주화를 부분적으로라도 모색해 보자는 이정표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둘째, 무기도입 군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백두사업은 군의 자주능력으로 북한 중요 정보를 많이 수집해 보자는, 그야말로 기밀 중의 기밀사업이다.

관계자들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 기밀을 지키려는 의식이 강했어야 했다.

그런데 미국에 주재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대령조차 기밀을 일개 미국 무기중개상에게 팔아 넘겼다니 군기이완이 개탄스럽다.

사건이 공개된 후 군당국은 당시의 국방장관 등 고위층의 개입혐의는 없고 도입되는 무기체계의 성능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율곡비리에서 보듯 무기선정.도입과정은 절차가 다단계여서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있을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거론되고 있는 무기중개상이 한국의 군고위간부.유력정치인들과 자주 접촉했다는 의혹 등이 있으니 군검찰은 백두비리의 전모를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군은 지금이라도 관계자들의 수뢰비리가 백두사업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정찰기가 국내에 들어오는 데까지는 수년이 남아 있으니 정보자주화에 맞는 성능을 차질없이 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 공군의 전폭적인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 부분에서도 구멍이 뚫린다면 그 손실은 비리보다 더 크다.

율곡과 백두의 부끄러운 모습은 현정부의 군당국에 냉엄한 교훈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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