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의 원료 녹두의 안정적 공급처를 구하러 중국 출장 길에 나선 1924년 그는 20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북간도에서 상봉했다. 그때 동포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상업으로 국가를 살리고 개인도 살릴’ 방도를 궁리했다. 2년 뒤 귀국해 병든 동포를 구하는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세웠다. “항상 국민보건을 위해 일하라. 우리 민족은 일본보다 못하지 않으니 민족의 긍지를 갖고 일하라. 유한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직원 조회 때마다 토로한 그의 기업정신은 일제 치하만이 아니라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그는 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10대 시절부터 1945년에 국내 첩보활동을 위한 침투계획인 ‘NAPKO’ 작전에 참여할 때까지 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친 지사였다. 그러나 그의 삶과 정신이 감동을 자아내는 더 큰 이유는 부의 세습을 넘어 사회적 상속을 실천한 보기 드문 기업가였기 때문이다. 1937년 그는 주식을 사원들에게 나눠주어 기업을 종업원과 공유해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에 옮겼다. 그때 시작된 유한양행의 종업원지주제는 1973년 제도화되었다. 직원들과 손을 맞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웃음 띤 얼굴(사진 앞 中=조성기 『유일한 평전』)은 나눔이 주는 마음의 풍요를 잘 보여준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을, 첫째 기업을 키워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 성실하게 납세하며,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비문에 아로새겨진 그의 기업가 정신은 오늘 우리를 소스라쳐 깨어나게 하는 정문일침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