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황급히 일어난다
텅 빈 가슴 위에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메마른 머리칼에
반듯하게 기름을 바르고
구더기들이 기어나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쏟아 붓고
죽은 발가죽 위에
소가죽 구두를 씌우고
묘비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 김혜순 (金惠順.43) '죽은 줄도 모르고' 중
삶의 일상은 이렇듯이 참담하게 죽어있는 상태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침대에서 일어나 구더기들이 기어나오는 내장 속에 아침 식당의 우유를 쏟아붓고 죽은 발에 구두를 신고 묘지나 다름없는 거리로 나오는 한 사내의 무자각적인 반복의 출근과 퇴근에서 시인은 카프카적인 사망선고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악마주의가 도리어 인간 회복을 호소하는 역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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