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돈 쓰기식' 교통량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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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5분 근무 15분 휴식, 하루 8시간. 5일 근무에 1일 유급휴가, 지각.조퇴도 OK' .정부의 실업자 대상 '공공근로사업 시행지침' 의 근로조건이다.

교통개발연구원도 지금 이 지침에 따라 전국 실업자 1천여명에게 31억원을 나눠준다.

대상업무는 교통량 조사. 도로 옆에서 지나가는 차량의 숫자를 세다가,가끔은 세우고 "어디서 오느냐, 어디로 가느냐, 왜 가느냐, 뒤에 실은 화물은 뭣이냐" 등을 묻는 일이다.

내년 예산도 1백20억원쯤. 전국을 대상으로 이같은 매머드 교통량 조사는 정부수립 이래 처음이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게 분명하다.

이 조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는 당연하다.

"물류비용이 그렇게 높을 때도 엄두를 못내던 연구자료를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가질 수 있다니…. " 조사는 3개월 작정으로 9월초 시작됐다.

처음엔 어디서,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조사원들은 조금 해보다 "땡볕에 어렵다" 며 중간에 들어가는가 하면, 조사원을 구하지 못한 곳도 수두룩하다.

'오전 9시~오후 6시' 를 조사시간으로 명시해 출퇴근 교통량 조사는 엄두도 못내고, 주말 교통량 조사도 제외된다.

조사를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는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현장에선 부실조사.통계조작이 예사다.

이런 식으로는 제대로 작성된 자료를 골라 쓰는 것조차 어렵다.

▶ 교통량 조사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돈 쓰기식' 실업자대책을 벌이는 정부▶ 조사내용.방법 등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고 정부가 정한 일정대로 무리하게 조사를 강행하는 교통개발연구원 ▶ "왜 조사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자료인지" 를 잘 모르는 현장 조사원 등이 함께 몇 트럭분의 부실 교통량 조사표만 양산 (量産) 할 것인가.

실업대책도 되고, 신뢰할 조사자료를 얻는 교통량 조사기법을 연구해야 한다.

조사결과를 어떻게 쓸지 토론하고, 유효한 조사방법을 생각하자. 조사시간대 (帶) 를 교통량 흐름에 맞추고, 전문조사원의 참여폭을 넓히는 것도 한 길이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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