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삼불후론(三不朽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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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삼불후론 (三不朽論) 은 중국 노나라 사람 숙손표가 진나라 범선자에게 유교적인 정서에 대해 한 말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업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은 덕 (德) 을 세우고, 다음은 공 (功) 을 세우고, 그 다음은 말 (學) 을 세워 후세에 남긴다는 말이다.

후세에 남겨 오래 돼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를 불후라 하며 열거한 바와 같이 세가지로 불후할 수 있으니 삼불후라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평생의 업적으로 세워 후세에 남긴 사람은 수한 (壽限) 이 끝나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의 업적은 이승에 남아 후세에 영원히 전하게 돼 후세인들의 추앙을 받으며 사모하는 대상이 되니 영원히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사기록에 남은 민족의 추앙대상 인물이 모두 이에 속하는 것이다.

이 분들의 삶의 정신은 맹자의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바이나 두가지를 동시에 얻지 못한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 는 정신과 공자의 "지사 (志士) 와 인인 (仁人) 은 삶을 위해 인 (仁) 을 해치지 않으며 인을 해칠 바에는 삶을 버리고 인을 성취하겠다" 는 살신성인 (殺身成仁) 정신이다.

모두 생사를 초월한 경지의 충효절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이 나라를 지켜오던 올곧은 자주정신이며 자손만대에 이어져 나가야 할 사상이다.

임진왜란때 금산전투에서 옥쇄 (玉碎) 한 조헌 (趙憲) 선생의 위국충정 사상을 불후정신 차원에서 이 시대 공직자들과 공감하고자 약술하기로 한다.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전에 이미 병란을 예언하고 국왕인 선조에게 국방대책을 상소 (上疏) 해 당시 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상소하는 방법이 유별나게도 대궐문 앞에 거적을 깔고, 도끼 하나를 챙겨 두는 방식이었다.

내심 상소내용이 죄가 된다면 그 도끼로 자신을 처형해도 좋다고 하는 결사적 (決死的) 인 각오를 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마침 그무렵 일본국의 사신 현소 (玄蘇)가 와서 오만하게 명나라를 칠 것이니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선생은 다시 상소로 일본 사신의 목을 베고 이 사실을 명나라에 알릴 것을 요청했으나 선조는 망령된 소리라며 일축하고 말았다.

답변을 기다리던 중에 사흘간이나 굶어 허기진 채 승정원 문밖 기둥 주춧돌에 머리를 부딪쳐 상처를 낸 후 피로 얼굴을 적시니 관리들이 비아냥거렸다.

선생은 내년에 병란이 나거든 피란길에 내 말이 실감날 터라 하면서 피를 뱉아 그들을 비웃었다.

귀찮게 여긴 왕은 유배령을 내렸다.

명령이 당도하자 임금의 명을 받고 사가에서 밤을 지내는 법이 아니라며 밤중에 길을 재촉해 떠나는 모습은 지켜보던 권속들에게 숙연함을 느끼게 했다.

다음해 조헌의 예언은 적중해 왜란이 일어나니 소위 임진왜란이다.

무방비 상태의 전쟁에서 일사천리로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적소에서 앙천통곡하면서 격문을 지어 충청.전라.경상도에 파발을 놓아 의병을 일으켰다.

비웃음거리가 됐던 그의 예언과 대죄상소 (待罪上疏) 사건은 더욱 유명하게 퍼져 그의 선견지명에 따르는 의병이 3도에서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도끼 들고 대죄상소한 소문은 기병구호 (起兵口號)가 돼 평안도.황해도까지 알려져 의병이 모여들어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금산전투에서 거듭되는 소모전에 병기가 탕진되고 지원이 단절된 채 물밀듯 밀려드는 왜병을 막지 못하고 속수무책일 때 피신을 요청받았으나 거절하고 "이곳이 나의 순절 (殉節) 할 땅이다" 하면서 최후의 독전을 했다.

사기충천하던 의병들도 백병전으로 육박하다 모두 장렬하게 옥쇄했다.

7백 의병 가운데는 선생의 아들 조완기 (趙完基) 도 섞여 있었다.

조완기는 용모와 기량이 뛰어났으며 일부러 의관을 화려하게 차리고 싸웠다.

전황의 위급지경에서 적에게 자신을 의병장 (조헌) 으로 오인시켜 아버지를 살리고자 하는 효심이었다는 사실은 뒤에 안 일이지만 적이 조완기의 시체를 조헌으로 알고 창칼로 난자질하는 사후의 모욕을 아버지 대신 받고자 하는 세심한 효심에 감명되는 바가 크다.

조헌 선생 부자 (父子) 의 충효절의 정신은 만고의 사표로 추앙하고 본받을 정신이다.

오늘의 국정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은 유방백세 (流芳百世) 의 신념으로 자신의 직무를 통해 오욕을 저지르지 말고 삼불후 정신을 실천해 후세에 추앙받기를 기대한다.

권오흥(인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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