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MBC 새 이사진에게 주어진 두 가지 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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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로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책무는 자신들이 경영 관리·감독 책임을 맡고 있는 문화방송(MBC)의 공영성을 되찾아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야권에서 주장하듯 방문진 이사진 교체가 ‘정권의 방송 장악’으로 귀결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믿음이다. 하지만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후 사실상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온 MBC를 근본적으로 수술해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방송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영의 투명성이다. MBC는 공영방송을 자처해왔지만 방송 내용은 물론 운영 시스템조차 공영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왔다. 공영방송이라면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MBC는 방만 경영이라는 숱한 지적에도 불구, 내부 감사 결과가 외부에 공표되기는커녕 감독 책임을 가진 방문진 이사회에조차 보고되지 않은적도 있다고 한다. 방문진과 경영진,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내부 감시체제가 느슨해진 결과였다. 이러다 보니 ‘노영(勞營)방송’이란 소리를 듣고, 경영 악화에도 평균 1억원이 넘는 직원 연봉은 요지부동이며 노조원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여도 방송에 차질이 없을 정도의 인력 과잉 등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보도 여과 장치다. 광우병 파동 때처럼 왜곡·조작 방송으로 사회적 대혼란을 야기해도 경영진이 책임 있는 진상 조사를 벌이지도 않았다. 편파·왜곡 보도를 사전에 거를 수 있는 내부 여과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한 작가의 개인적 정치·이념 성향이 공중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에게 막무가내로 강요되는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9일부터 임무를 시작하는 새 이사진은 이런 상황 인식을 명백히 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보도 여과 시스템을 구축해 MBC가 진정한 공영성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조도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싫다면 보다 자유로운 민영방송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