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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택숙자'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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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승용차 전용 침대는 식사 때 식탁으로 변한다. 택시 운전사들이 차 안에서 반찬통을 펼쳐놓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화보]

▶ 운전이 직업인 택시기사들에게 하체 운동은 필수다. 주차장 곳곳에 마련된 자전거들은 이를 위해 ‘택숙자’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택시기사들이 점심 식사를 한 뒤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외환위기가 노숙자를 낳았다면 최근의 경기불황은 '택숙자'를 양산했다. 경기 침체로 빈 택시가 시내 곳곳에 즐비하다.

그나마 손님 구경할 수 있는 곳이 공항이다. 일반택시는 물론 개인택시와 모범택시, 콜밴까지 공항으로 몰려든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 터를 잡고 밤샘 대기를 하지 않으면 손님을 태울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택숙영업'을 하는 운전기사는 줄잡아 200여명. 최근에는 불법 자가용 영업까지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공항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손님을 두고 치열한 경쟁과 눈치싸움을 벌인다. 때론 곳곳에서 멱살잡이를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이들은 자치회를 구성해 질서를 잡아나가고 있다.

'택숙자'가 본격적으로 인천공항에 진을 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처음 인천공항이 생겼을 때도 택숙자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좀 더 많이 벌기 위해 '택숙'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적인 택시영업으로는 사납금 대기도 힘들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공항으로 택숙자들이 몰려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일제 택시기사들이다. 이들은 택시회사와 따로 계약을 하고 교대 없이 전일제로 영업한다. 12시간 교대제로 일하는 일반택시의 사납금은 8만원이지만 이들의 사납금은 12만원이다. 연료비는 본인부담이다. 장거리 운행(지방)이 없는 경우는 하루 두번으로는 사납금 채우기도 어렵다. 돈을 벌려면 시내에서 심야 영업까지 해야 한다. 손에 쥐는 돈은 한달에 고작 140만~180만원 정도. 내집 마련은 요원한 꿈이다. 생활비 충당하기도 벅차다. 인천공항 장기 주차장은 '택숙자'들의 살림방이 된 지 오래다. 지루함을 달래야 하는 택시기사들은 주차장 곳곳에서 진풍경을 연출한다.

주차장 한편에는 택숙자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 갖다 놓은 자전거도 있다. 차 안에 마련한 간이침대는 끼니때가 되면 식탁으로 변한다. 달궈진 택시 철판은 빨래 건조대로 안성맞춤이다. 트렁크 안에는 담요.옷가지.버너 등 세간살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글.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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