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안토니오니감독 '정사' 비디오 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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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60년 칸영화제에서 난동에 가까운 관객들의 야유를 받고도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 이탈리아 출신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현대인의 심리에 걸맞는 영화어법을 들고나온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든 흑백영화 '정사' 가 영화마을에서 비디오로 나온다.

이 영화의 첫번째 정사장면의 주인공은 세도가의 딸인 안나와 부유한 약혼자 산드로. 그러나 문밖에 친구 클라우디아를 세워놓고 한낮에 거침없이 벌이는 이들의 정사에 흥분할 관객은 거의 없다.

흥분을 방해하는 것은 우선 카메라의 시선. 여느 정사장면들처럼 침대에 누운 두 남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구경거리삼는 대신,가로 누운 산드로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안나의 눈높이를 고집한다.

그런 카메라에 담긴 안나의 표정은 쾌락은 커녕 권태에 젖어있다.

요트여행에서 안나가 실종되고, 클라우디아와 산드로가 사랑에 빠지는 이런 사건에서 전통적인 기승전결 줄거리의 역동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왕년의 칸영화제 관객들처럼 분노와 허탈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사건의 출발이 된 안나의 실종에 대해 끝까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 대신, 풍요로운 부르조아의 일상 갈피 갈피에서 권태로운 내면을 잡아낸다.

이것이야말로 '정사' 가 일관하고 있는 주제이고, 로베르토 롯셀리니.비토리오 데시카 등 직전 세대 네오리얼리즘감독들의 사회성짙은 시선과 정반대로 나아간 안토니오니가 '모더니스트' 로 불리는 이유다.

영화의 원제는 '모험' .그러나 친구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진 클라우디아 (모니카 비티) 의 애정행각이 모험수준인 것은 결코 아니며, 지극히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모험을 표현한 안토니오니의 영상과 졸지않고 만나는 것 자체가 여느 비디오팬의 모험이다.

17편의 안토니오니 작품중 국내출시는 이것으로 모두 4편. 번역제목은 대개 원제와 거리가 멀다.

영국에서 찍은 66년작 '확대 (Blow Up)' 가 '욕망 (우일)' 으로, 82년작 '여인의 증명 (Identificazione di una donna)' 이 '보디우먼 (대영)' 으로 나와있고, 와병중에 빔 벤더스의 도움으로 찍은 96년작 '구름 저편에 (Par dela les nuages.시네마트)' 에 와서야 원제에 가까워졌다.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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