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명 파업 태세 러시아 '총체적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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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일 오전 극동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 사할린스크의 한 공립학교. 한통의 전화가 이 학교를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밀린 임금과 엉망인 나라 사정을 저주하던 끝에 "학교에 폭탄테러를 하겠다" 고 위협한 것이다.

경찰이 동원돼 학생들을 대피시키는 등 소동을 벌이고 있는 사이 2천여명의 노동자들은 체불연금.임금의 지급과 옐친의 사임을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15만명이 시위에 참가한다는 정보 때문에 1만5천명의 군.경 병력이 배치돼 거리의 분위기가 자못 삼엄하다.

이번 총파업은 '8.17 대외채무지불유예 (모라토리엄) 와 루블화 평가절하 조치' 이후 극심한 물가폭등과 정정 (政情)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 자칫 러시아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뇌관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번 파업과 시위에는 2천8백만명 (러시아 독립노조연맹 주장)에서 4천만명 (공산당 주장) 이 참가할 것으로 보여 91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 집권 이후 최대 규모며 최대 시련이 되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는 총파업을 하루 앞둔 6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체불임금과 연금을 지급하겠다" "우리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에 함께 타고 있다.

전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자제를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고 있다.

상황이 역전되려면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옐친 대통령의 인기는 여론조사기관에서 더 이상 조사를 중단할 정도로 밑바닥을 기고 있는 실정이다.

서민들은 옐친의 측근들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깡패 자본주의' 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수도 모스크바의 모습은 다른 곳과 달리 아직은 조용하다.

자칫 폭력사태가 벌어질까 우려해 내무부와 국방부.연방보안부 (FSB) 등 무력 행사기관들이 모스크바에만 3개 군여단과 1개 경찰여단을 배치하고 준비태세에 돌입해 있다.

오전 10시 시내 중심가에 가까운 옥차브리스카야 광장을 찾았다.

모스크바 중심지에서 유일하게 레닌의 동상이 남아 있어 공산당 등 좌파계열의 시위집결지인 이곳도 붉은 깃발을 든 시위대가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93년 10월 유혈시위사태의 주동자중 한명인 빅토르 안필로프 '노동러시아' (투르도바야 로시야) 지도자는 각종 혁명가요가 흘러나오는 스피커 옆에 서서 몰려든 기자들에게 "오후부터 시민들이 모여들 것이며 모스크바에서만 10만여명이, 그리고 전국적으로는 2천만명 정도가 참여할 것" 이라고 강조하고 연신 시위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6개월째 월급을 못받고 있다.

현 사태를 초래한 정치인놈들은 모두 감옥에 처넣고 옐친은 물러나라" 고 소리치면서 '체불임금 지불' 이라는 구호를 들고 지하철역 파르크 쿨트르 역 입구에 서 있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38) 의 모습은 시위의 성공에 관계없이 흔들리는 러시아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했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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