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길 7년 만에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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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안개인지, 서릿발인지/시야는 온통 우윳빛이다.//먼 숲은/가지런히 세워놓은/팽이버섯, 아니면 콩나물.//그 너머로 방울토마토만 한/아침 해가 솟는다."('겨울 아침 풍경 1' 중)

80을 바라보는 노시인의 눈에는 겨울 아침해가 방울토마토로, 막 해를 띄워올린 앙상한 숲은 팽이 버섯이나 콩나물 줄기로 보인다. 그런 시선과 경지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원로시인 김종길(78)씨가 7년 만에 여섯번째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솔)를 출간했다. 시선집 성격이었던 시집들을 빼면 '전작(全作)'으로는 세번째에 불과하다. 1997년 이후 쓴 90여편 중 70여편을 추렸다. 시인은 "평생 과작(寡作)으로 일관했던 사람이 늘그막에 다작(多作)을 한 셈이니 노욕을 부린 것이나 아닌지 민망스럽다"고 밝혔다.

시인은 걱정했지만 시편들은 '노욕'과는 거리가 멀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사물의 명암과 윤곽이/더욱 또렷해진다.//가을이다.//아 내 삶이 맞는/또 한 번의 가을!//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해가 많이 짧아졌다."('가을' 전문) '가을'에는 또 다시 가을을 맞은 노시인의 감흥이 군더더기 없는 언어 속에 절제돼 있다. 시인은 "시 작품은 꾸민 티 없는 하나의 자연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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