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감세가 최상의 기업친화정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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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금껏 정부가 가닥을 잡은 개편 방향은 대략 이렇다. 우선 서민들에게 직접 혜택이 가지 않는 세제 개편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상속·증여세 인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통합하는 방안도 장기 과제로 돌렸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점진적으로 내리기로 하고 이미 관련 법까지 고쳤는데도 내년 인하분을 유보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또 하나의 방향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대기업이 주로 혜택을 보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축소 또는 폐지하고, 월급쟁이 소득공제도 감면 혜택이 큰 항목을 중심으로 축소가 예상된다. 예컨대 보약이나 성형수술에 대한 소득공제는 없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도마에 올랐다. 현재는 카드 사용액이 연봉의 20%를 넘으면 초과분의 20%를 최고 500만원 한도 내에서 공제해 준다. 한도를 모두 채워 혜택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인 만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감세 기조에 제동이 걸리면서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감세 기조를 깰 수도 없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많이 퍼부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서다. 재정건전성 문제는 정치적 논쟁거리로 번지고 있다.

감세 시행이나 유예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예정대로 감세를 시행하면 정책의 일관성을 살리며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신 유예하면 세수를 수조원 더 늘릴 수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양쪽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계속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감세정책 추진을 분명히 밝혔던 점과 그의 평소 화법을 감안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로 들린다.

물론 만고불변의 정책이란 있을 수 없고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게 변하는 게 경제정책이다. 더욱이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닥쳤으니 세제를 신축적으로 손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의 일관성 또한 중요하다.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펴야 외국투자자들이 몰려오고, 개인이나 기업도 정부를 믿고 열심히 일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세제 개편의 핵심은 법인세·소득세 추가 인하 계획의 시행 여부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유보하면 내년에 3조7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정부가 감세 기조를 이어 갈 뜻이 분명하다면 이만큼의 세금을 다른 곳에서 더 걷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좋다. 그런 다음 국회에 “이래도 소득세·법인세 인하를 유보할 거냐”고 맞서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로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에 대한 징세권 강화를 꼽을 수 있다. 정부도 마침 세파라치(신고포상금제)를 의사·변호사에게 적용하고 조세범에게 과태료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올바른 방향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법인·소득세율 인하는 이미 대내외에 약속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법인세·소득세 부담은 경쟁국인 대만·싱가포르·홍콩보다 높다. 세금이 많으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다. 감세정책은 세계적 추세다. 그러니 계획대로 감세정책을 밀고 가는 게 좋다. 감세정책은 현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다.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긴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투자를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면 일자리가 늘고, 결국 서민의 삶도 좋아진다. 더구나 한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빨리 회복 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마당에 너무 수세적으로 경제 운용 계획을 짤 필요가 없다. 민간투자와 소비가 살아난다면 정부가 더 이상 재정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된다. 세수도 늘어나면서 재정건전성 걱정도 덜 수 있다. 세금을 낮추면 경제 주체들에게 충분한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이는 투자와 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낳는다. 이게 바로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기업친화)’정책 아닌가.

박의준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