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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지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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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약 2300년 전의 중국은 일곱 개의 큰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국시대였지만 능력 있는 인재들은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며 요직을 차지했다. 이들을 가리켜 객경(客卿)이라고 했다.

그중 최강국이던 진(秦)의 귀족들은 객경들이 출신국의 이익을 위해 진의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며 객경 추방론을 폈다. 이에 맞선 이사(李斯)가 주장한 것이 유명한 해납백천(海納百川)의 논리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거부하지 않아 커졌고, 강과 바다는 잔물결을 가리지 않아 깊어졌다’는 내용이다.

한국 스포츠의 외국인 지도자 기용은 날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축구는 이미 국가대표 사령탑에 외국인들을 연거푸 기용한 전력이 있다. 국내 리그 역시 네 명의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야구도 만년 꼴찌로 지목됐던 롯데가 2008년 로이스터 감독 체제로 바뀐 뒤부터 체질 개선을 이뤘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밥그릇 싸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축구에 올림픽 동메달을 안긴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1992년 한국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을 맡아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국내 지도자들과의 갈등 끝에 스스로 물러났다. 비쇼베츠 감독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자 한국에 돌아오지도 않고 현지에서 사퇴를 선언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온 대한민국이 거스 히딩크의 월드컵 4강 신화에 들떴던 2002년에도 14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동아시아 정상으로 이끈 아브라함 브람 감독의 재계약은 취소됐다. 팬과 선수들은 반발했지만 기술위원회와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국민의 희망 박태환의 부진이 지도자들 간의 파벌 싸움 때문이었다는 지적에 이어 박태환 스스로도 “세계적인 전문가로부터 지도받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 외국인 지도자 기용이 유력해졌다. 오직 실력과 실적으로 승부하는 외국인 지도자들은 국내 지도자들이 항상 얽매이는 파벌과 학연 등 인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이들의 기용이 국내 지도자들의 분발로 이어졌다는 다른 종목의 선례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박태환이라는 인재의 등장이 국내 수영계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지금이 중요한 때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용이 난 물이 다시 실개천이 되지 않도록 둑을 쌓는 지혜를 기대해 본다.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