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석연휴에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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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울한 귀성 (歸省) 이다.

조상을 찾고 친척을 만나 덕담을 나눴던 지난해 추석이 아련한 옛 추억처럼 남아 있다.

2백만명에 가까운 실업으로 집안사람중 한두명은 실의에 빠져 있거나 부도난 사업체 때문에 귀성마저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엊그제까지만 해도 대풍이었던 고향 농사가 태풍으로 하루아침에 폐농 직전까지 가는 어려움에 처했다.

나라 살림이 이꼴이지만 백성들의 시름을 풀어줘야 할 정치는 민생은 젖혀둔 채 과거사의 족쇄에 묶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수십조 수천억이라는 천문학적 돈이 신문지상으로는 끊임없이 풀려나가고 있지만 내 집안 내 수중에는 한푼이 만져지지 않는다.

빈약한 가계를 털어 시름에 찬 귀성길에 오르고 있다.

지금 우리가 긴 추석연휴를 맞아 불만과 분노의 한풀이 연휴를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운 역경속에서나마 한가위 보름달처럼 화합과 나눔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정치인.기업인.국민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먼저 정치권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세풍 (稅風)' 이든 '북풍' 이든 과거사에 얽매여 오늘을 혼란속에 빠뜨리는 정치국면에서 벗어나 민생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대안을 내놓는 보름달처럼 둥근 화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

환부를 도려내는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의 결속이다.

여야가 갈등하고 남북을 이간질하며 동서를 갈라서게 하는 정치로는 국민적 화합을 일궈낼 수 없다.

정치권부터 한가위 명절의 화합과 나눔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국민앞에 보여줘야 한다.

경제의 사활은 기업에 달려 있다.

그중 대기업의 역할은 막중하다.

숱한 구조조정과 빅딜이 거론됐지만 가시적 효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빅딜이 무엇인가.

이 또한 화합과 나눔의 역할분담이다.

불필요한 부분은 줄이거나 합쳐 함께 힘을 모아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자는 것 아닌가.

서로의 이익에 묶여 아직껏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민생을 생각하고 나라 경제를 구하는 구국적 차원의 새 변신이 없고서는 내년 추석의 우리 경제는 텅빈 달처럼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태풍 '얘니' 가 훑고간 남쪽 들판은 참담한 폐허로 둔갑했다.

친척 대소간이 힘을 합치고 마을 전체가 나서서 물을 빼고 벼를 세우는 공동체 작업을 벌여야 한다.

이번 추석연휴는 놀고 즐기는 연휴가 아니다.

불행해진 친척을 감싸고 십시일반 (十匙一飯) 의 나눔의 정을 베풀며 마을 농사에 협력하는 '일하는 한가위' 여야 한다.

그리고 내년의 풍성한 추수를 위해 각기 맡은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반성하고 대안을 궁리하는 '생각하는 추석'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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