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연구가 왕현모씨]'놀이는 또 하나의 배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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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추석은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 명절이다.

삶의 터전이 여가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추석이다.

한여름 농사철동안 마당을 차지하고 있던 각종 수확물들이 곳간으로 들어가고, 벼가 자라던 논도 거대한 운동장이 된다.

따라서 한가위를 시작으로 마을 전체가 거대한 놀이터로 변모하는 것이다.

놀이가 개인의 성장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규칙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아는 사회성이 땀을 훔치며 노는 사이 저절로 체득된다.

실패와 실수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것도 놀이의 특징이다.

금을 밟아 죽건, 땅에 쓰러져 패하건 다시 일어나 툭툭 털면 그것으로 새출발이다.

좌절이란 없는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큰 위안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엔 손님이 찾아오면 사랑방에서 기다리는 사이 유객주 (留客珠) 를 내놨다.

이는 나무와 구슬로 만든 일종의 게임기다.

의젓한 선비도 구슬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다림의 조바심을 달래곤 했다.

어른과 아이가 섞일 땐 아무래도 윗사람의 양보가 필요하다.

동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반가운 조카를 만나도 몇 마디 주고 받으면 더 이어갈 얘기가 군색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놀이를 함께 하면 지루함 없이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 심성을 이해하고 자연스레 교훈을 심어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난히 힘겨웠던 올해. 사실 아이들이 받았던 충격도 컸다.

풍요의 시대만 보아온 자녀들에게 경제위기는 생소하면서도 당혹스런 것이었다.

이번 추석엔 가족이 함께 놀이를 해보자. TV에, 전자오락에 묻혀 살았던 어린이들에게 질서와 화합의 지혜를 전해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왕현모 YMCA 건전놀이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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