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노벨상급 과학자, 미래 영재들 가슴에 꿈 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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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영재리더십 캠프’에서 소외계층 영재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제로 강의를 한 임지순 교수 가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준 뒤 악수하고 있다. [아산=프리랜서 김성태]

“초등학교 때 10년 후 내 모습을 상상해서 적은 글을 상자에 넣어 마당에 묻었어요. 이사 다니는 바람에 잃어버렸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타임캡슐’이었어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타임캡슐.”

국내 과학자 중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임지순(58·서울대 천체물리학부) 교수. 그는 타입캡슐을 찾지는 못했지만 캡슐에 간직한 ‘과학자’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말은 49명의 소외계층 영재들 가슴에 타임캡슐처럼 자리 잡았다.

29일 충남 아산시 한국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린 ‘영재리더십 캠프’. 가정 형편 때문에 사교육 한번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는 영재들에게 자기 계발의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교육개발원이 마련했다. 16개 시·도교육청에서 선발된 중학생 49명이 28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참가했다. 한 부모나 조부모와 살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임 교수는 ‘리더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연단에 섰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수소 저장 연구로 바쁜 그이지만,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는 취지에 흔쾌히 응했다.

전남 고흥군 점암 중앙중학교 2학년 박지웅(15)군은 농사일을 하는 조부모와 살지만 전남 과학경진대회에서 2년째 동상을 받았다. 그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연로해서 언제까지 공부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며 “강의를 듣고 나니 끝까지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노력 못지않게 창의력도 중요하다며 수소 저장 물질의 연구 과정을 소개하자 학생들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전깃줄에 빽빽이 앉아 있는 참새를 봤어요. 그때 기체인 수소를 참새처럼 모아놓을 수 있는 전깃줄 같은 물질을 만들면 수소의 에너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게 연구의 발단이 됐어요.” 임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는 “달에 줄 달린 로켓을 발사해 지구와 달을 줄로 연결하면 지구와 달을 오가는 케이블카를 만들 수도 있다”며 “과학은 그런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남 나주의 남평중학교 2학년 이재영군은 “누나들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캠프에 와 보니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의 김미숙 소장은 “영재교육 대상자 중 소외계층 자녀는 3700여 명으로 이들은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영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작아진다”며 “가난 때문에 영재교육에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49명의 학생은 4일간의 교육이 끝나는 31일 각자 꿈을 담은 ‘미래일기’를 타임캡슐에 담는다. 점암 중앙중학교의 박군은 “훌륭한 화학자가 돼 세상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담겠다”고 했다. 이 타임캡슐은 35년 후 개봉한다.

아산=정현목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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