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식재산관리회사, 특허전쟁의 첨병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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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외국의 ‘특허괴물(Patent Troll)’에 맞서기 위해 5000억원 규모의 특허펀드를 만든다고 한다. 또 범정부 차원에서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내 기업들은 요즘 생산·판매는 하지 않고 특허만 보유한 채 돈을 버는 외국의 특허괴물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만든 인텔렉추얼 벤처스(IV)의 경우 펀드 규모만도 5조원이 넘는다. IV는 최근 삼성·LG 등에 대해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금전적·정신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계가 특허전쟁에 돌입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논문을 낸 뒤 6개월이 지나면 그 연구결과에 대한 특허 출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교수나 연구원들이 적지 않다. 또 특허법원까지 설치해 놓았지만 정작 특허침해소송은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으로 분류돼 일반법원이 맡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구조를 일원화시키기 위한 법안은 밥그릇 다툼으로 인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의 특허괴물들은 국내 대학과 연구소를 돌며 될성부른 기술들을 입도선매 방식으로 싹쓸이하고 있는 중이다. 국민 세금까지 지원해 애써 개발한 기술들이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리고, 자칫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흉기로 둔갑할지 모를 상황이다.

우리는 새로 탄생할 지식재산관리회사가 특허전쟁의 첨병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발 앞서 13조원 규모로 조성 중인 일본의 ‘산업혁신기구’는 좋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특허괴물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관료주의부터 경계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접수되는 서류만 뒤적여서는 결코 발 빠른 특허괴물들을 당해낼 수 없다. 정부·대학·기업이 손잡고 직접 현장을 누비며 싹수가 보이는 기술들을 가려내야 한다. 아울러 지금부터라도 첨단기술과 특허를 경제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세기가 노동과 자본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산업사회였다면, 21세기는 고부가가치의 지식기반 경제가 화두다. 전 세계가 특허 등 지식을 핵심 생산요소로 삼는 지식기반 경제로 옮겨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