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 여당 정책위원장에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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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은 1만달러 수준인데 정부와 여당은 3만달러 시대에 어울리는 분배 정책을 하는 것 같다. 불안해서 투자를 못 하겠다."

"정치인들 같으면 지금 상황에서 사업할 자신이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칭하면서) 물 장사를 한 분도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느냐."

지난달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의 '제주 서머포럼'에서 '정부.여당의 향후 경제정책 방향'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이 혼쭐이 났다. 강연 후 기업인들이 불만 섞인 질문을 잇따라 쏟아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정부.여당 내 사람들의 얘기가 오락가락해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고, 이 같은 정책 혼선이 기업인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무엇이 정책 혼선인지를 사례를 들어 얘기해 달라"고 되받아쳤다가 곧바로 "위원장 얘기가 바로 혼선 그 자체"라는 비난을 샀다. 한 참석자는 "홍 위원장은 성장 우선 정책이라고 하지만 (정부.여당 내) 다른 사람들은 분배에 역점을 두는 얘기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홍 위원장은 투자하라고 하지만 기업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투자하겠느냐"라고 선을 그었다. 기업인들이 봇물 터진 듯 정부를 힐난하자 결국 홍 위원장은 "돈 잘 버는 사람이 왕이고 이게 시장경제의 핵심인 것 같다"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외환위기를 겪어 보니 '사업보국'이란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경영이념이 정말 실감나더라"면서 "사업을 잘해 세금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애국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홍 위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내년 중엔 토지와 관련한 법규를 단일화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올해 중엔 토지 규제를 한눈에 알아보는 지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토지 관련 법이 100개가 넘어 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올해 안에 단일화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더니 내년에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고 밝혔다. 홍 위원장은 또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연결납세제도 도입을 보류하는 대신 법인 간에 주고받는 배당에 대한 법인세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7월 임시국회에서 보류된 고용창출형 분사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적극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제주=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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