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노숙자'판친다…임시거처 신청자중 최고7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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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2일 오전11시30분 서울역 광장 노숙자 상담소 앞.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朴모 (53) 씨가 담배를 문 채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작구사당동에 산다는 朴씨는 "지난 4월까지 식품회사 트럭운전사로 일하다 실직한 뒤 넉달째 놀고 있다" 며 "가족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노숙자 쉼터에 들어가면 공공근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 입소하러 왔다" 고 털어놓았다.

서울시가 겨울철 노숙자 보호를 위해 21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임시거처 입소 신청에 '사이비 노숙자' 들이 대거 몰려 노숙자대책이 차질을 빚고있다.

상담을 맡고 있는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 측은 21일 서울역.용산역.영등포역 등 5개 상담소를 찾은 2백50여명의 노숙자 가운데 20~30%인 70명 가량이 노숙자가 아닌 집에서 거주하는 실직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2일에도 서울역 상담소를 찾은 1백50여명중 무려 70% 가까운 상담자들이 단순 실직자로 조사돼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실직자들이 노숙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시가 쉼터에 입소하는 노숙자에게는 공공근로를 보장한다고 홍보했기 때문.

서울역 상담원 金진호씨는 "옷차림새로 봐서 노숙자로 보이지 않는데도 본인이 노숙자라고 우겨 일단 접수를 받고 있다" 며 "이들로 인해 정작 희망의 집에 들어가야 할 노숙자들이 입소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고 말했다.

그러나 시와 노숙자대책위원회 (위원장 李在禎 성공회대학총장) 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앞으로 지방 등에서 '사이비 노숙자' 가 상경할 경우 노숙자대책이 어려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李위원장은 "예상은 했지만 단순 실직자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올 줄 몰랐다" 며 "상담과정에서 이들을 선별하겠다" 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의 노숙자대책은 당초 약속했던 희망의 집이 제때 문을 열지 못해 상담 노숙자들이 모두 입소하지 못하는가 하면 입소한 일부 노숙자들이 술주정으로 퇴소하는 등 준비부족과 관리 소홀의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문경란.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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