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사라지고 바나나가 가로수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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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반도의 온난화 속도는 세계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1912~2008년) 세계 연평균 기온이 0.74도 오르는 동안 한반도는 1.7도나 올랐다. 해가 갈수록 여름철 집중호우가 심해지고, 열대야를 기록하는 날도 많아진다. 덕분에 최근 강원도 양구의 비닐하우스에서 멜론이, 노지에서는 사과가 자란다. 강릉의 온실에서는 여름철에 자라는 하귤(夏橘)이 한창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작물재배 한계선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0년 뒤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국립기상연구소는 최근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기온도 계속 오른다면 향후 100년 뒤엔 연평균 기온이 4도나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산지를 제외한 남한 지역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구로 바뀐다. 전라도는 물론 강원도 산간 지방 곳곳에 있는 스키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민족을 상징하는 소나무도 자취를 감춘다.

2100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두 배쯤 되는 시점이다. 유엔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당분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고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21세기 지구 온난화는 지난 세기에 일어난 것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분석된다. 국립기상연구소의 100년 뒤 예측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립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과장은 “21세기 말이 되면 위도가 낮은 제주도는 여름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제주도는 물론 울릉도와 동해안·남해안 지역에서는 겨울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과장은 “연평균 기온이 4도 정도 오르면 서울은 지금의 제주 서귀포나 일본 오키나와쯤의 기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후가 바뀌면 당연 그 속에서 자라는 식물도 바뀐다. 제주도 온난화 대응 농업연구센터에서 실험재배하고 있는 30여 종의 열대·아열대작물 대부분이 22세기에는 우리나라 곳곳 노지에서 자연스럽게 자라게 된다는 얘기다.

이때가 되면 제주도에서만 재배되는 귤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과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제주도에서도 온실에서만 자라던 바나나가 ‘을지로의 사과나무’처럼 도심의 가로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망고·파인애플·인디언 시금치·아테모야 등 제주도 온난화대응 농업연구센터의 온실 속에서 실험 재배되고 있는 열대·아열대 작물도 모두 온실이 아닌 노지로 나오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소비되는 사과의 70%를 차지하는 후지 사과 품종은 백화점의 수입과일 코너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된다. 온난화 대응 농업연구센터 서영호 박사는 “후지 사과는 날씨가 추워져야 빨간색으로 착색이 되면서 익는다”며 “기온이 4도 정도 올라가도 후지 사과가 자랄 수는 있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재배할 농가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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