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쌍용차 생존의 길, 솔개에게 묻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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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02면

솔개는 40살쯤 되면 부리가 휘어지고 발톱이 무뎌져 사냥을 못 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솔개는 수명 연장을 위해 처절한 고통을 감내한다. 먼저 휘어진 부리를 바위에 쪼아 없앤다. 그런 뒤 새 부리가 자라면 무뎌진 발톱을 쪼아 뽑아낸다. 이런 고통을 무릅쓰고 환골탈태해야 70살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다.

법정관리 상태인 쌍용자동차는 40살을 맞은 솔개와 비슷한 처지다. 쌍용차의 종업원 1인당 생산대수는 11.3대로 현대자동차(29.6대)나 기아자동차(34.9대)에 뒤진다. 세계 1위 업체 일본 도요타자동차(68.9대)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종업원 일부를 내보내는 고통을 이겨 내고 경쟁력을 회복하느냐, 아니면 모두 끌어안고 죽음을 맞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쌍용차는 전면 생산 중단 상태다.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에 반발해 600여 명의 조합원이 경기도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 탓이다. 점거 파업 65일째다. 쌍용차 노사는 여야 의원 등이 참여한 중재단의 요청으로 25일 교섭을 재개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회사 측이 “노조가 대화 재개를 합의했음에도 볼트총을 발사하고 생산라인을 훼손하는 등 극렬한 폭력행위를 계속해 대화하는 게 의미가 없다”며 협상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중재단의 설득으로 사측이 다시 대화에 나서겠다고는 했으나 노사 불신의 골이 워낙 깊다.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사측은 노조 파업으로 24일까지 1만2800여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져 28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손실액이 쌓여 감에 따라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이 5월 초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쌍용차의 존속가치는 1조3276억원으로 청산가치(9386억원)보다 3890억원 큰 것으로 나왔다. 당장 문을 닫는 것보다 공장을 돌리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 존속가치가 줄게 돼 얘기가 달라진다.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아지면 채권단 입장에선 쌍용차를 파산시킨 뒤 부동산과 설비 등을 팔아 빚을 받아 내는 게 더 유리해진다. 실제 채권단은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쌍용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동회’는 “이달 말까지 쌍용차가 생산을 재개하지 않으면 파산 신청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노조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솔개에게서 보듯 희생 없이 새 삶을 얻을 수 없다.

2000년 말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가 미 GM에 인수된 뒤 회생하면서 정리해고했던 직원 중 복직을 희망한 1609명 전원을 2006년 다시 채용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쌍용차 노조는 살아남은 4500여 명의 동료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명가’를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루빨리 공장을 돌리도록 하는 게 복직을 앞당기는 첩경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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