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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씨 신작소설집 '실직자 욥의 묵시록'펴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조성기 (47) 씨의 중.단편 소설들은 세태를 첨예하게 반영해낸다.

그러면서도 쉽사리 세태풍자로 읽어넘길 수 없는 깊이를 지닌다.

내주초 민음사에서 펴낼 신작소설집 '실직자 욥의 묵시록' 에는 다섯 편의 길고 짧은 소설이 묶여있다.

실직의 불안이 종교적 망상으로 이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인간들의 미련은 또 다른 망상을 낳는 사람들의 얘기. 실직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조각조각 모아 다시 반추해보는 실화소설과 삼십여년전 고향집을 찾아 굽이굽이 토해내는 감상 등이 한권의 소설집 속에서 크고 작게 자리한다.

일반적인 리얼리즘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시대. 가족을 등진 만취의 노숙자가 지하도를 가득 메우고 돈 때문에 목숨까지 던져 보험금을 타야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의 작태에다 엘니뇨와 라니냐까지 뒤범벅이 된 요즘을 그는 개탄하고 있다.

표제 중편 '실직자 욥의 묵시록' 은 정신병에 걸린 교사가 주인공이다.

정신병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족으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주인공은 정신병원과 기도원 등을 전전한다.

실직자에다 정신병자인 주인공 욥. 그는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택한다.

광신적인 종교에 귀의, 곧 그는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망상으로 그의 삶을 겨우 지탱할 뿐이다.

단편 '거대한 망상' 의 여주인공 기혜 또한 종교망상자다.

삶의 커다란 무게를 혼자 지지 못하고 휴거론을 내건 종교단체에서 휴거를 기다린다.

예정된 시간이 넘어도 신은 내려오지 않고 다시 방황하는 기혜. 작가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현시대를 '조울증에 걸린 환자' 라고 표현한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조증 (躁症)에서 IMF라는 울증 (鬱症) 으로 떨어진 데서 기인하는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익을 대로 익어간 작가의 소설적 기법도 만만찮은 관찰 대상이다.

정신병자의 내면적 독백을 짤막짤막한 문장으로 엮어간 이른바 '묵시록체' 를 사용한 '실직자 욥의 묵시록' , 인물.시간.공간적 배경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단편의 전형적인 완결성을 보여주는 '거대한 망상' , 유년의 달콤한 기억을 단 몇 장으로 짧게, 시적으로 표현해 낸 '유년의 시학1' 등. 그 차림이 풍성하고 다채롭다.

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지금까지 종교.역사.성 (性) 이란 세 가지 주제에 깊이 천착해 왔었다.

기독교 작가란 호칭을 붙여준 '라하트 하헤렙' , '야훼의 밤' , 삼국유사를 소설화 한 '천년동안의 고독' 과 대하소설 '전국시대' 그리고 '욕망의 오감도' 와 '우리시대의 사당패' 등은 성의 본질에 대한 것들이다.

이제 그는 이런 것들에 대해 한걸음 물러서 전부를 보고 있다.

"쭉 보고 있어요. 안에 들어있지 않고 좀 떨어져서. " 전환기적 사회를 살아왔던 작가의 치열한 사회탐색이 이제 관조로 변해가고 있다.

그의 연륜이 그렇고 필력 또한 그렇다.

이런 시선으로 조망한 결과, 내놓은 신작 '실직자 욥…' 이 그런 그를 또렷이 보여준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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