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수혈 감염'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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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강수 사회부 기자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9일 부적격 혈액 유통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대한적십자사는 이런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적십자사가 정부로부터 혈액사업을 위탁받은 것은 1981년. 당시 30여만명에 머물던 헌혈자는 지난해 말 253만명으로 급증했다.

올 7월 말 현재 1인당 연간 5000~1만원을 내는 적십자 회원이 700만명이고 이들이 낸 회비가 393억원이라고 한다.

올해 목표인 회원 708만명의 98%, 회비 407억원의 96%에 이르는 성과다.

'헌혈은 사랑'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매혈(賣血) 문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급성장의 뒤에 부실의 그림자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일반인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채혈.혈액검사.혈액 출고 등의 전 과정에서 자칫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즈 감염 7명을 포함해 19명이 감염 피해를 봤다는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이번 수사는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99년 이후의 혈액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는 훨씬 많을 수 있다.

적십자사는 16세 미만~65세 이상, 채혈 후 2개월이 지나지 않은 사람 등 채혈금지대상 3만2789명의 헌혈도 마다하지 않았다. 헌혈자의 건강보다는 성과 올리기에 급급했다.

적십자사 임직원들이 80년대 초 일본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에이즈 약화(藥禍)사건 '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우병치료제를 혈우병 환자에게 투여, 1800여명이 감염되고 400여명이 사망한 일본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어야 했다.

조강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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