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누더기 미디어법’ 갈 길 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현 정부 들어 지루하게 논란이 되어 온 방송법, 신문법, IPTV법의 소위 미디어 3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앞으로도 이 법 개정에 반대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문·방송의 겸영 허용,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허용함으로써 1980년 군사독재정권이 신문·방송 등 미디어를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기 위해 자행했던 언론 통폐합에 기초한 미디어시스템의 일각이 무너지고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80년 신군부는 민영방송이었던 TBC·DBS·전일방송·서해방송·한국FM을 KBS에 통합하였고, CBS 등 종교방송에서는 보도 기능을 폐지시켰으며, MBC 주식의 65%도 KBS가 인수하게 했다. 이러한 폭거의 결과는 사실상 모든 방송을 정부가 장악하게 해 오늘날과 같은 지상파 방송의 담합적 과점구조를 탄생시켰다. 이는 방송광고 유통을 방송광고공사가 독점적으로 담당하고 프로그램 끼워팔기, 방송사 간 교차보조 등 전형적인 담합유지 수단들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유지돼 왔다. 그 폐해는 ‘신의 직장’ 소리를 듣는 방만한 경영, 항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방송사와 프로그램 공급자 간 하도급과, 방송사나 그 종사자 위주의 편파방송 시비, 낙하산 인사, 노조의 불법파업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부작용은 이번 개정안에 따른 진입규제 완화로 경쟁이 활성화될 경우 일정 부분 개선될 여지가 생겼다. 또 통신과 방송부문에서의 융합화 가속화와 기술적인 발전에 토대를 둔 미디어 산업화를 향한 미디어시장의 본격적인 개장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현 여건에서 경쟁력 있는 복합 미디어사업자의 출현이 가능하도록 규제와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국제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긴요한 문화·콘텐트·소프트웨어·게임 산업 진흥과 이에 연계된 다양한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확정된 진입규제 완화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디어산업 진흥이나 방송의 보도 편향성 시정 등이 어렵다고 본다. 방송사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방송광고의 유통을 독점하여 담합적 과점구조의 정점에 있는 소위 KOBACO(방송광고공사)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그 서비스에 대해 시청자가 직접 수수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가 프로그램에 끼워서 광고를 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광고대금으로 수익을 얻는다. 따라서 방송광고 유통의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계속 기존 방송사의 과점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기업, 일간신문, 뉴스통신의 지상파 방송 출자나 경영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2012년까지 유보하는 조항을 둔 것은 문제다. 게다가 그 이후에도 신규 사업자에겐 지분의 10% 이내로 소유를 제한한 반면, 기존 방송사에 대해선 1인 지분소유 한도를 30%에서 40%로 확대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됐다. 이러한 구도는 결국 기존의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M&A 가능성을 더욱 차단시키는 것은 물론 이들과 실질적인 경쟁을 할 만한 방송사업자의 출연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 나라에 도움이 되는 미디어 부문의 개혁을 이룩하려면 향후에도 KOBACO의 해체와 미디어렙시장에서의 완전한 경쟁 도입,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 현재 설정된 신규 사업자들에 대한 지분제한 추가 완화 등의 과제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